사자는 두 눈을 크게 뜨지 않는다. 가볍게 한쪽 눈만을 뜬 채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천방지축으로 사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뛰어가는 쥐를 부드럽게 바라본다. "니까짓 게?"로 비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림책의 뒷 내용은 어떻게 될까?
사자는 쥐의 꼬리를 잡는다. 당연히 잡아먹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쥐가 간청한다. 이번 한 번만 풀어주면 반드시 당신을 돕겠다며 애원한다. 쥐를 잡아먹어야 하는 것이 동물 세계의 법칙 이만, 비웃음을 날리며 사자는 쥐를 놓아준다. "네가 나를 돕는다고?" 사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쥐를 풀어준다.
길을 걷던 사자가 큰 그물에 걸린다. "살려줘, 도와줘"라고 포효하는 사자의 소리를 멀리서 들은 쥐가 다가온다. "내가 당신을 풀어줄게요". 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뾰족한 이빨로 그물을 끊어낸다. 그물에서 풀려난 사자는 웃을 수가 없었다. 쥐에게는 도움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풀려난 자신이 우습다. 그리고 쥐에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함을 나타낸다.
한 번쯤 어디서 들어봤을 이야기다. 지금 와서 이 얘기가 이렇게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아마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교훈을 직설화법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스며들게 전달해주는 그림책을 만나서 기뻤던 것이다.
영어 그림책 지도사 수업과정에서 <The lion and the mouse>를 학습하면서 선생님은 가장 먼저 사자와 쥐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했다.
사자와 쥐의 공통점은 미뤄두고 차이점을 이야기하면 크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자는 크고 쥐는 작다. 사자는 힘이 세고, 쥐는 유연하다 등등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편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느껴지는 바는 사자가 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순간 거대한 몸짓의 사자가 와서 돕는 것보다 작고 뾰족한 이를 가진 쥐의 도움이 훨씬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나는 동네 서점 '세종 문고'에서 <내가 종이로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3회 차 수업을 하였다. 대학교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실험 수업을 했던 때와 달리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재활용을 통한 환경 보호에 대해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사실 준비에 앞서서 걱정이 많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전업 주부가 되어 어디에도 사용할 수 없는 지난날의 유물이었기 때문에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재생 종이를 만들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왜 우리가 종이를 재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종이를 재사용하는 것이 나무를 덜 벨 수 있는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에 한 가지라는 것을 강조했다. 더불어 재생 종이를 만들기 위해 올바른 재활용 방법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었다.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가치 있는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을뿐더러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다. 종이를 전공했던 나는 천연 펄프로 종이를 만드는 것보다 재생 펄프 사용을 촉진하는 연구를 많이 진행해 왔다. 대학에서 심화하여 배워왔던 과정을 그림책을 활용한 방법으로 알려줄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쥐와 같은 작은 몸집을 지니고 있는 내가 어디에 도움 하나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나에게도 날카로운 이가 있었던 것이다.
재생 종이를 만드는 수업에서 가장 큰 재미는 직접 아이들과 버려지는 종이로 재생 종이를 만드는 일이었다. 한 장 쓰고 버리는 복사용지, 스케치북을 잘게 찢어 믹서기에 갈고 채를 이용해 물기를 빼는 과정을 통해 재생 종이를 만들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직접 재생 종이를 만드는 시간이 큰 의미를 가졌다. 들은 바로는 실험 수업이 아이들에게 가장 만족도 높은 수업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지막 3주 차 수업이었다. <쓰레기 귀신이 나타났다>라는 그림책을 읽고 독후활동을 했다. 재활용 잘 된 쓰레기가 갈 수 있는 '새로 새로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가 직접 만든 재생 종이야 말로 '새로 새로 나라'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새로 새로 나라'의 이미지를 그리고 꾸며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재생 종이를 그곳에 넣어주었다.
아이들의 모든 작품은 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수업을 준비하기 전에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주춤했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재생 종이를 통해 환경을 연관시켜 알려주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이 수업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 있을까 또 반문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만들었던 '새로 새로 나라'를 보며 나는 속으로 많이 울었다. 아이들 덕분에 내가 준비했던 수업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가르친 것보다 더 많이 표현하고 알려준 아이들 덕분에 준비했던 것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전업 주부로 있으면서 대학교 때 열정을 가지고 배웠던 지식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무엇하러 비싼 돈을 주고 시간을 투자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물 속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자처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 답답함을 가슴속으로 표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나를 가두고 있던 그물을 끊어주었다. 나만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시대에 나도 나만의 무기 하나를 장만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을 당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총알 하나 비축했다는 것만으로도 곳간에 쌀이 가득 찬 기분이다.
<The lion and the mouse>의 마지막에는 "ALWAYS HELP OTHERS"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림책에서 찾을 수 있는 사자와 쥐의 공통점은 서로를 도왔다는 것이다. 애피타이저로 적당하지만 사자는 쥐를 먹지 않고 놓아줬다. 크기가 작아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쥐에게 사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누구 하나 똑같지 않은 이 세상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로 타인을 도울 수 있다. 아이들만 키우는 전업주부로서 살아온 그동안의 삶은 오로지 내 아이들에게 한정된 도움이었지만 이제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나만의 가치로 더불어 사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더 많은 실천이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