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아저씨가 사라졌다

by 친절한금금

"그동안 고마웠어, 잘 지내라고..."

아쉬운 눈으로 못내 서운한 한마디를 남기며 경비 아저씨가 사라졌다.




경비 아저씨와 나는 아파트 동기다. 경비 아저씨가 입사한 해에 나 또한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아파트에 함께한 세월이 같은 셈이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경비 아저씨와 돈독한 정을 나누며 지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서먹하게 인사만 하고 지냈던 경비 아저씨였지만, 아이가 하나 둘 태어나면서 서로의 안부를 격하게 묻는 사이가 됐다.


"우리 공주들 오늘은 어디 가나~"

"큰 공주가 전보다 씩씩해진 것 같아"

"막내 공주가 벌써 유치원을 간 거야? 참 예쁘게 잘 자라는 것 같아"


가끔 엄마를 힘들게 하는 날에는 아이들을 달래시며 내편을 들어 주기도 하셨다.


분리수거를 하다 아저씨와 마주치면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힘들게 아이를 가지셨던 아저씨는 나를 보면 자녀를 키웠던 옛 추억이 떠오르는지 옛날이야기보따리를 잔뜩 쏟아 내셨다. 아이가 너무 귀하고 예뻐서 부인대신 손수 분유를 타서 먹였다고 했다. 애지중지 키웠더니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랐다면서 사랑으로 키울 것을 항상 강조하셨다.


일을 참 잘하셨던 경비 아저씨였다. 분리수거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직접 프레임을 제작해 포대자루를 씌어 놓았다. 주민들이 분리 수거하기 편리하도록 애쓰신 것이다. 물론 당신의 일이 수월하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다른 동을 돌아보면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이 지저분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동만큼은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깨끗함을 유지했다. 약수통에 호수를 달아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에 놓았던 아저씨는 수시로 물걸레질해서 주변을 닦곤 했다.


"혹시 괜찮으면 아파트 화단 관리를 위해서 찬조금을 낼 수 있을까?"


5년째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 경비 아저씨가 했던 말이었다. 아파트 화단은 관리 사무소에서 관리하는 영역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우리 동은 경비 아저씨가 사비를 들여서 거름을 주고 화초를 심으며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철마다 예쁜 꽃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 이후로 다른 동의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유독 우리 동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꽃이 폈던 것은 아저씨의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 경비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기에 아래층 사는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일을 하시다 갈비뼈에 골절이 생겨 입원하셨다고 했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의 사고 소식을 듣고 주민들의 병문안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계약 관계로 경비 일을 보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주민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로 맺어진 경비 아저씨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파트 관리는 2명의 경비 아저씨가 교대로 맡고 있었다. 일 잘하셨던 아저씨와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사람 좋으셨던 아저씨도 계셨다. 손주 나이와 우리 딸의 나이가 같아서 유독 예뻐라하셔다. 지나가다 우리 막내를 보면 꼭 부르셔서 손에 한 움큼 사탕을 쥐어주셨다. 어느 날부터는 새것 한 봉지를 주시는 날도 있었다. 커피 사탕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주시는 마음이 감사해서 번번이 격한 고마움을 표현했었다.




며칠 전 외출을 하기 위해 나가는 길이었다. 멀리 서 계신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경비 아저씨가 할 말이 있는 듯 다가왔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잘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아저씨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10년을 넘게 정들었던 곳을 떠나야 한다는 아저씨의 말에 당혹스러움과 슬픔이 교차했다.


최근 아파트에서 경비 관리 업체를 바꿨다. 경비들에 대한 근로 계약 종료와 함께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10년이 넘도록 한 아파트에서 일해 온 경비분들의 생계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아파트만의 것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관리비 절감 및 근무 태만을 문제 삼아 관리 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파트에 우리 경비 아저씨처럼 일을 잘하시는 분이 계셨던 반면 주민들의 불만이 섞인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경비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무척이나 허전하다.


한 개의 동에 한 명의 경비가 상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두 개의 동을 한 명의 경비가 관리한다. 당연히 집 앞 경비 초소는 언제나 비어있다. 여름밤이면 삼삼오오 경비실 앞에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눴다. 아이들 손을 잡고 지나갈 때면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던 사랑방 같은 곳이 비어버렸다.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셨던 것만큼 무거운 짐을 들고 오면 "놔두고 일 보러 가요~내가 정리할 테니까" 하시면서 살뜰히 챙디던 경비 아저씨가 없다. 감사한 만큼 분리 수거할 때 신경 썼던 부분도 있었는데, 선량한 감시자가 사라지니 나의 태도 또한 느슨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며칠 뒤 아파트에서 경비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 웬일이세요"

"응, 내가 사비를 들여 설치해 놓은 게 있는데 가져가야 할 것 같아서 왔어"


분리수거를 위해 10만 원이 넘는 사비를 들여 설치했던 프레임을 가지러 오신 것이다. 다행히 아저씨는 다른 아파트에 금세 취직을 하신 것 같다. 아쉬우면서 그 아파트 주민들이 부러웠다. 내 집처럼 여기며 아파트를 살뜰하게 챙겼던 이웃을 뺏긴 기분이다. 아쉽지만 아저씨와 진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눈 오는 날에는 계단으로 다녀, 유모차 다니는 길은 미끄러운데 사람이 줄어서 잘 안 치울 수도 있잖아. 굉장히 미끄러울 거야"


오늘도 텅빈 경비 초소를 보니 살가웠던 아저씨의 목소리와 웃음이 떠오른다. 부디 다른 곳에서도 건강히 잘 계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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