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엄마만의 공간'이라 불리던 곳이 어느 순간부터 '공유 주방'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큰 아이의 백일이었다. 식당을 예약해도 됐지만 고지식한 나는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식구들을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식구를 모아 놓고 음식을 준비하는 외동딸이 눈에 밟히셨는지 친정 엄마는 양손 가득 음식을 준비해 딸 집을 방문하셨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 중에서도 단연 쪽갈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시댁식구들도 엄지척을 들면서 한입에 쏙 하고 뼈에서 빠지는 갈비를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먹는 것도 좋았고 나 혼자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하는 수고를 덜은 것도 편했지만, 엄마가 주방에 있는 게 석연치 않았다. 편히 앉아서 내가 해드리는 음식을 드셔도 될 텐데, 20명가량이 먹어야 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외동딸이 걱정되었던 엄마의 마음이 냄비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이하는 어머니의 생신 날이었다. 첫 생신이니만큼 며느리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가득 찼다. 드라마 <며느라기>를 보니 당시 나는 제대로 된 '며느라기'를 겪고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예쁨을 받고 싶어서 '제가 할게요' '제가 다 할게요'를 일삼았다는데, 내가 어머니에게 생신상을 차리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겼던 마음이 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것도 며느라기의 일부라고 한다면 수긍해야 할 부분이다. 삼색 나물과 미역국 심지어 생일 케이크까지 직접 만들었다. 친정 엄마와 아빠에게는 단 한 번도 미역국을 끓여 드린 적 없던 내 손이 당연하다는 듯 도마 위의 칼날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한 번이었다. 백일 상을 차리면서 대식구를 대접했던 것도 시부모님의 생신상을 차렸던 것도 매년 있었던 며느라기의 행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친정부모님께는 하지 못했던 생신상 차리기가 못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결혼 후 5년이 지났을 무렵, 친정엄마의 생신이었다.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남편이 불쑥 장모님의 생신상을 차려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일을 하고 계시는 장모님이 늦은 저녁에 오셔서 저녁을 차리기 힘드실 테니 우리가 상을 차리자는 것이었다.
집 앞에 마트를 들러 간단히 장을 보았다. 양념된 불고기, 미역국과 호박을 사서 전을 부쳤다. 엄마가 미리 해놓은 반찬까지 차리고 보니 그럴싸한 생신상이 완성되었다. 엄마는 우리가 와준 것만으로도 기쁜 마음이셨을 테지만, 퇴근 후 거실에 차려져 있는 상을 보시곤 입가의 웃음이 꽃처럼 만개하였다.
결혼 후 10년이 지났다. 인천-부산에 살고 있지만 두 달에 한 번 이상을 꼭 만나는 시부모님은 제일 먼저 큰 며느리집에 방문하시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전에는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면 기본으로 나물 3개, 찌개거리와 고기 종류의 반찬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최근의 나는 며느라기를 탈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나보다 남편의 변화가 더 크다.
요즘 남편은 요리를 한다.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요리 활동을 즐기고 있다. 심지어 부모님 혹은 장인 장모님이 오셨을 때 어떤 음식을 대접할지 일주일 전부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는 남편은 요리에 관해서도 치밀한 계획형 인간이다. '이번주 부모님 오시는데 어떤 찌개를 하지?''반찬은 이 정도만 있으면 되지 않겠어?' 밥만 하면 되는 나에게 이보다 반가운 질문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어른들이 오셨을 때 반찬의 개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우리 집 만의 사정은 아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시누 또한 부모님이 오시면 항상 밥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누가 더 많은 반찬을 준비하는지 대결이라도 하듯 시누와 나는 안 쓰는 그릇들을 총 동원해서 상다리가 부러져라 가족들의 상을 차려왔다.
하지만 결혼 10년 후부터 많은 것들이 변했다. 어쩌면 그것에는 남편의 말이 일조한 것도 있을 것이다. '반찬 누가 먹는다고 많이 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차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도 서운했다. 친정 부모님께 해드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 부모님을 위해 내가 차리겠다는 것인데 타박받아야 할 일인가 싶었다. 몸이 힘들어서 반찬이 줄은 건지, 남편의 말 때문인지 모르겠으니 시누와 나는 이제 상 위에 차려진 반찬 개수를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하듯 자주 방문하시는 시부모님도 조촐한 식사에 대해 잘 먹었다는 말씀뿐이시다. 더군다나 아들이 차려준 꽃게 된장찌개와 쪽갈비가 올려졌으니 맛이 있든 없든 그의 정성에 감동하신다. 우리 아들이 예전부터 설거지도 잘하고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며 그의 행동에 칭찬일색이시면 한수 얹어 그의 올바를 행동에 나도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두 손에 모아 힘껏 박수를 친다.
남편이 요리를 시작하면서 시누의 남편도 이에 질세라 음식을 직접 하는 일이 늘었다. 며칠 전 시부모님이 방문하셨을 때 시누집에 갔었다. 주방에는 양파가 가지런히 썰려있어고 새우가 손질되어 있었다. '어머니 이거 뭐예요?'하고 물으니 '송서방이 파스타 해준다고 준비해 놓고 애들 데리러 갔지 뭐니' 답하셨다. 안 그래도 점심을 먹지 않고 시누집에 방문했는데 아주버님이 파스타를 해주신다고 하여 입에 군침이 돌았다.
아주버님은 아이들 픽업을 마치고 오자마자 손을 걷어 부치고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서 차려주는 밥을 기다리는 기쁨이란 이로 말할 수 없다. 긴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전문 셰프처럼 음식을 플레이팅 하는 모습에 나는 옆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멋있어요~언제 이런 걸 배우셨어요!!!'. 아주버님은 음식을 해주는 것이 기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셨다.
연신 맛있다고 먹는 내 앞에 시누가 앉더니 볼멘소리를 시작했다. 시계는 4시 30분을 가리켰다. 보통 시누집에서 식사 시간은 5시 30분이었기 때문에 계획형 시누에게 아주버니의 파스타는 화가 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일 수 있었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은 아주버님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끼어 실망한 표정으로 뭉그러졌다.
나는 남편이 해주는 음식이 뭐든 불평하지 않는다. 물론 간이 맞지 않아서 가끔 맛이 없을 때도 있고, 3천원하는 금같은 애호박 하나를 찌개 하나에 다 쓰는 일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남이 해주는 음식이면 된다. 심지어 음식에 대한 평가가 가끔씩 이뤄지는 남편이 손수 해준다면 나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불평 없이 먹는 부인이 기특해서일까? 남편은 반년이 넘도록 주방을 벗어나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오신 날, 나의 주방이 나란히 서서 음식을 하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모습을 보면서 "공유 주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주방이 며느리, 엄마, 부인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 공간임을 확인 한 순간 불편한 감정은 뒤로 하고 이 모습에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의 주방을 침략하는 자들에게 바란다. '우리 집 주방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으니 언제든 들어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