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면, 행복을 포기해야 할까
조서환 아시아마케팅포럼회장 세바시 강연 "인생은 마케팅이다"
어제 유튜브에서 세바시 강연을 봤다. 강연자가 말하길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는 전쟁에 참여해 머리에 파편이 꽂히고 한쪽 팔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절망의 순간에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지금의 '아내'였다. 팔이 없어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그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몰입과 집중"은 없는 힘도 끌어올렸다. 영어를 세 번만 봐도 외워지게 하고, 면접에서 안면몰수하고 회사에 입사해야 하는 이유를 찰지게 말할 수 있게 한 힘은 "간절함"이었다. 과거에 군인이었던 그는 치약의 대명사 2080과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히트작을 낸 마케팅계의 거물이 되었다.
만약 그에게 절망의 순간이 없었다면 그의 미래는 어땠을까? 아마 군인 아파트에 거주하며 나라의 돈을 받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지 않았을까. 팔을 잃었지만 더 큰 미래를 살고 있다면 불행의 무게에 비례해서 행복을 얻은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해야 할까?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있다는 전제는 어떤가.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비교에 의해 생겨나는 감정이다. 닭과 알처럼 선후관계를 따지지 않고 쌍둥이처럼 함께 있기에 알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관계이다. 갓난아이조차도 행복과 불행에 대해 알 것이다. 배가 고픈데 우유를 주지 않아서 울 수밖에 없을 때 불행하지만, 우유를 먹고 난 후 포만감에 행복을 느낄 것이다.
모든 것이 쉽게 주어졌을 때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 티브이만 보는 아이가 있다. 어느 날 매일 숙제를 12시까지 시키면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며칠동안 늦은 밤까지 이어오던 공부를 하루 쉬었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숙제도 없이 티브이만 봤더니 "오늘은 행복한 날이야"라고 말한다. 매일 티브이를 보던 일상에서는 행복이라 느끼지 못하던 아이에게 불행이 답을 알려준 것이다.
최근에 수포자, 영포자가 많다고 한다. 어렵기 때문에 혹은 힘들기 때문에 쉽게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면 불행 없이 행복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공감이 된다. 일말의 아픔에도 쉽게 쓰러지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것을 불행의 요소로 삼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요즘 세대에서는 공부 또한 힘든 일의 하나로 삼기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지 않는다. 공부를 포기해서 당장은 편할테지만 먼 미래에 행복 또한 포기한 것이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라는 말보다 'no pain no gain'이 더 힘을 싣고 싶다.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당장 티브이를 보지 못하고 몸을 쉬게 하지 않아 짜증이 나지만 엉덩이 붙이고 글자 하나라도 본다면 나의 내일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행복의 척도가 공부의 양과 정비례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한 몰입과 집중의 순간들이 모이면 반드시 결실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힘든 순간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 불행하다 느끼는 현재가 무언가는 얻기 위한 고통임을 알려주고 싶다. 불행이라는 단어는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다. 고통을 느끼며 노력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어려운 순간이 닥치더라고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한 고통이라 여기며 담담하게 행복을 불러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