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빠의 첫 외제차

by 친절한금금

친정아빠가 차를 뽑았다. 아. 중고 차니까 새 차를 뽑았다는 말은 좀 어울리지 않은가? 어쨌든 아빠는 2005년식 검정 외제차를 저렴한 가격에 사셨다. 몇 년 전 농사를 위해서 새로 산 트럭이 있음에도 중고로 검은 세단을 장만하신 것이다.


외제차를 사신 뒤 아빠의 일상은 많은 것이 달라져 보였다. 차가 효자라도 되는 것처럼 검은 그 녀석은 아빠에게 좋은 기운들을 선물해 줬다. "카톡" 울리는 메시지를 확인하니 부모님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셀카를 찍고 계셨다. 한상 가득 차려진 횟집에서 엄마 혼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사진이 부모님의 설렘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강원도 주문진에 가시는 걸 좋아하셨던 부모님이셨다. 트럭이 생긴 뒤로는 장거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발걸음이 뜸했었는데, 검은 외제차가 생긴 후 옆집 가듯 자연스럽게 여행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여행을 같이 가지 못하는 나보다 검은 외제차가 효자인 것이 분명했다.


모임이 있으신 날이면 아빠의 어깨는 더 들썩 거린다. 엄마와의 전화를 통해서 전해 들은 바로는 모임을 다녀온 아빠의 어깨가 천장을 찌를 것 같다고 했다. 이 녀석은 아빠의 자존감까지 높여주는 진정한 효자임에 틀림없었다.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내적인 면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반면 보이는 것들은 시각적 효과와 장착하고 있는 물건의 가격을 통해 그 사람의 일부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자동차 역시 그중 한 부분일 것이다. 손쉽게 외제차인지 국산차인지만을 보고도 단편적인 인물의 평가가 이뤄진다. 물론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내부 옵션이나 사양 혹은 가격을 판별해 가면서 알겠지만, 나 같은 문외한은 외제차라고 하면 꽤 잘 사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게 된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졸속한 나의 수준으로 볼 때, 저렴한 가격으로 장만한 20년 된 아빠의 중고 외제차는 사회적 지위를 가성비 좋게 높여주는 수단이 되었다.



아빠는 차가 생기면 항상 외갓집을 방문하는 게 철칙이었다. 다마스를 샀을 때에도 보라색 티코를 샀을 때에도 아빠는 늘 장인 장모님을 태우고 동네를 드라이브하는 것을 당연시 해 왔다. 지난 주말에 90을 바라보시는 외할머니와 삼촌 식구가 친정집에 놀러 왔다. 감자를 심고 저녁을 먹기 전 잠깐의 시간이 비었다.


"장모님, 드라이브 가시죠" 아빠가 호탕하게 할머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셨다.


"여보, 음료수 좀 챙겨줘"

드라이브를 가면서 굳이 음료수를 먹을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아빠의 말대로 음료수 4개를 챙겨 차에 올라탔다.


"장모님, 천장 좀 보세요."

아빠는 선루프가 있는 차 위를 가리키며 미세먼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천장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셨다. 20년이 다 돼가는 차인데 선루프라니 나도 괜스레 신기해서 탄성을 자아냈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아빠는 뒤에 창문을 가리켰다.


"자, 뒤를 보세요"

어머나! 뒤 창문 위로 커튼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우리 차는 옵션이 많지 않은 편이라 이런 기능을 처음 접한 나도 신기함에 소리를 질렀다. 연식이 오래되었지만 풀옵션을 지닌 아빠의 검은 세단은 기가 막힌 녀석이었다.


"음료수 좀 줘봐"

운전을 하던 아빠가 목이 마르신 지 음료수를 찾으셨다. 파란 이온음료를 잘 챙겨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음료수 받침대가 나왔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 말처럼 생각지 않은 곳에서 음료수 받침대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웃음이 최고조를 찍었다. 아빠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음료수 받침대를 자랑하고 싶으셔서 일부러 음료수를 챙겨 나오신 것이었다. 내 새끼 자랑하듯 은근슬쩍 매력을 선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이브는 말 그대로 드라이브로 끝났다. 집 근처 유명한 공원이 있었지만 공원 주차장을 천천히 유턴하면서 "여기가 공원이에요" 눈도장을 찍고 집으로 향했다. 차의 승차감과 갖은 옵션들을 구경만 하고 공원에 발 한 번 디디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아빠, 공원에서 숨 한 번 쉬고 왔어도 되지 않았았나요. 혼잣말을 삼키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즐기며 속으로 웃었다.


집에 돌아와 할머니는 엄마에게 드라이브 후기를 알려주셨다.


"사위 차가 정말 대단하더라"

"세상에 천장에 창문이 열리는 차는 처음이지 않니"


저녁을 먹으면서도 아빠는 입이 귀에 걸려서 떨어지지 않으셨다. 외할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를 한 보람이 있으셨던 것 같다.




외제차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비싸고 수리도 까다롭고 유지관리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 보이는 이미지를 위해서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을 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빠가 산 외제차는 조금 다르다. 일단 중고로 샀기 때문에 상당히 저렴했다. 더불어 연식이 오래됐지만 풀옵션이고 클래식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환갑을 넘은 아빠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었음을 느낀다. 우리 집 검둥이는 그 어떤 비싼 차보다 훌륭한 값을 해내고 있다.


용접과 농사일을 하시면서 멋 한 번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빠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외제차라서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 무릎이 불편해서 퇴근 후 트럭을 탈 때마다 힘들어했던 엄마가 아빠의 외제차를 가장 반겨한다.


"퇴근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몰라".

고단한 일을 마친 뒤 힘겹게 팔걸이를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트럭이 아니다. 우아하게 차 문을 열고 따끈하게 데워진 의자에 몸을 기대면 3000cc가 넘는 아빠의 외제차가 엄마를 태우고 간다. 그저 중고차 일 뿐인데 아빠의 외제차 덕분에 우리 가족은 행복감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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