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겨우 시댁에 도착했다.
시누 남편이 운전해서 온 덕분에 편하게 자면서 올 수 있었지만 자정이 넘어 몸을 움직이는 일은 나이가 먹을수록 쉽지가 않다. 시댁 문턱을 넘자마자 배고픈 남편과 아이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친정보다 시댁이 편한 며느리는 주방이 아닌 욕실에 가서 씻고 잘 준비를 마친다.
4시간 잤을까?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시댁에 왔기에 절에 갈 채비를 했다. 차를 이용해 가지만 굽이 굽이 산길을 오뚝이처럼 흔들거리며 가다 보니 수면부족에 지친 몸이 유체이탈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산속에 있는 절에 도착하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교신자가 아니었기에 대법당에 어머니를 따라 들어가 절을 하지 않고 주변을 구경하며 도시를 탈피한 여유를 즐겼다.
시아버지는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니 산보나 하자고 하셨다. 가볍게 한걸음 한걸음 따라 올라가는 길은 뱀이 나와 반겨주는 산기슭이었다. 가을이 지나 수북이 쌓인 낙엽은 산길을 두텁게 가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탐험길을 연출했다. 6살 막내가 함께하는지라 시아버지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막내가 잘 버텨줬지만 낙엽이 쌓이고 경사진 길을 스스로 내려가는 것은 역부족이라 판단됐다. 남편은 오랑우탄이라도 된 듯 막내를 들춰 업고 눈앞을 가로막는 나무들을 제쳐가며 산밑으로 내려갔다.
산을 내려오니 어머니는 탑 주변을 돌며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 부처님 오신 날의 행사와 탐험에 가까운 산행을 마친 우리는 절 한쪽에 마련된 방에서 나물비빔밥을 먹었다. 고기 한점 들어가지 않은 비빔밥인데 무생채와 나물들의 조화로 새콤 달콤한 맛을 자아내는 자연식에 취해버렸다. 산행으로 지친 몸과 오복하게 부른 배를 움켜쥐고 집을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언제 소화될까 의뭉스럽던 배가 고불고불 산 길에 쉴 새 없이 요동치더니 자연스럽게 소화가 되었다.
오전 스케줄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저녁이 되니 물에 젖은 이불처럼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두가 힘든 저녁 시간에 남편이 두 귀를 의심하게 하는 제안을 했다.
"우리 노래방 갈까?"
평소 노래방을 자주가 기는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바닥에 눌어붙은 밥알이 되어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노래방이라니...
결국 모든 식구가 오색빛이 요란하게 비추는 노래방에 앉아 있었다. 피곤한 사람들이 집으로 먼저 들어가고 나니 시어머니, 남편, 시동생 그리고 나 만 남게 되었다. (언제나 끝까지 살아남는 정예멤버들..)
노래를 좋아하셨던 시어머니셨다. 사위가 있어서 숙녀처럼 사뿐히 박수만 치시던 어머니가 드디어 마이크를 잡으셨다. '노래를 워낙 안 해서 잘 못해'하시며 노래 한 곡을 완주하시더니 다음곡부터는 메들리의 연속이었다. 탬버린과 호응을 담당하는 큰아들 내외와 같이 노래를 불러주는 막내아들까지 있으니 어머니의 기분은 최고조에 오르셨다.
남편의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지지 않고 어머니는 며느리를 꼭 안으시고는 말씀하셨다.
"멀리서 와줘서 정말 고맙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어떤 것보다 감사해"
심장이 안 좋으셔서 기계를 달고 계시고, 5년 전 자궁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신 어머니는 유독 가족들의 만남에 눈물을 글썽이신다.
'이렇게 만나서 행복한 날을 오래 보고 싶구나'
부처님 오신 날, 어머니는 멀리 사는 가족들이 모인 날이 되어 기쁨이 두 배가 되셨을 것 같다. 그리고 효도가 큰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비행기 태워드리고 비싼 가방 사드리면 좋겠지만 작은 것이라도 함께하며 즐기는 시간이 소중하다. 시아버지에게는 해외여행 대신 산행을 시어머니에게는 명품백이 아닌 노래방 마이크를 쥐어 드렸지만 가족의 정만큼은 뜨겁게 채운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