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김장 이야기

by 친절한금금

일 년 중 가장 바쁜 달은 11월이다. 친정에서 한 번 시댁에서 한 번 김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김치를 사서 먹는 집들이 많다. 직접 담그고 싶은 사람들은 절인 배추를 사서 양념을 해서 먹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댁과 친정은 모두 100포기의 배추를 직접 뽑는 것부터 김장이 시작된다.


지난주 김장을 위해 남편과 친정을 다녀왔다.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게 도착을 했더니 이미 배추를 다 뽑아서 큰 고무통 3개 분량으로 배추를 절궈놓은 상태였다. 고무통 옆에 90을 바라보는 외할머니, 둘째 이모, 엄마, 막내 삼촌이 도란도란 앉아서 쪽파를 다듬고 있었다.



친정에서 김장이 6번째인 남편과 나는 자연스럽게 채칼을 찾아 깨끗하게 씻어놓은 무를 집어 들고 위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손을 움직이며 무채를 썰었다. 커다란 김장봉투를 3개 채울 때쯤 또 한 번 시시비비가 오갔다.


"작년에 김장봉투로 3 봉지 했더니 속이 부족했던가?"

"3 봉지만 해도 되지 않아?"

"넉넉히 4 봉지 하는 게 낫겠어".


무채를 썰던 기계적인 동작을 멈추고 엄마와 이모의 판결이 내려지기를 기다렸다. 결국 4 봉지를 하는 게 낫겠다는 엄마의 말씀으로 일은 다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가마솥 아래로 빨간 불꽃이 타오른다. 엄마는 솥단지의 뚜껑을 열고 말린 북어 대가리, 무, 양파, 다시마 등을 넣고 육수를 우린다. 불냄새가 가미돼서 일까? 가스레인지에 끓여내는 육수보다 가마솥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육수의 향은 더 진하고 풍미가 강한 것 같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 한채 차가운 한기가 도는 저녁이 되었다. 가마솥 뒤로 뿜어져 나가는 연기가 검은 하늘에 뚜렷하게 보일 즘 배추를 뒤집기로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녁을 먹은 후 배추를 뒤집었다. 아랫목이 뜨끈하게 보일러를 틀어놓은 거실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들이켜고 난 후 일을 나간다? 모두가 하고 싶지 않아 엉덩이 떼기를 힘들어했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저녁을 먹기 전에 배추를 뒤집에 놓고 마음 편하게 삼겹살을 먹기로 한 것이다.


엄마와 이모, 남편과 삼촌이 고무장갑을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배추를 뒤집으니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머리가 없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 잘하는 사람들 틈에 있다 보면 으레 관찰자 입장으로만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렇지만 시댁에 가서는 곰손에 땀이 나도록 분발해야 할 것을 되새겨 본다.)


'촥~ 촥~' 남편과 삼촌이 긴 불판 위로 고깃 덩어리들을 올린다. 작년에 담가 놓은 김치까지 올리고 고기가 익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고기의 양면이 바삭하게 익어 타기 직전의 먹기 좋은 상태로 익으면 그릇에 잘게 썰어 외할머니와 아이들의 식탁에 담아 가져다 드린다. 식구가 많아서 김장하기 좋은 점도 있지만, 밥을 먹을 때 내 입으로 들어오는 고기의 순서가 느린 것은 참기 힘들다.


군침을 여러 번 삼키고 나서야 겨우 내 순서가 되었다. 고기 기름에 볶아진 김치와 삼겹살을 입안에 한 움큼 집어넣는다. '아! 이 맛이야'. 시골이라 일이 많은 친정에서 노동 후에 먹는 삼겹살은 어느 고기 맛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다. 그래서 술이 술술 들어갔나 보다. 오랜만에 놀러 오신 이모부와 주거니 받거니 술이 들어갔다. 20대에 이모부 집에서 하숙했던 추억들을 안주 삼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김치를 절이러 왔는데 내가 술에 절여졌다.


다음 날 새벽 5시, 아픈 머리를 쥐여 붙잡고 배추를 씻으러 나갔다. 4시에 일어났어야 했는데 모두 한 잔씩 걸치고 피곤한 상태라 한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각자 큰 고무통을 끼고 물을 받아 배추를 씻어 옮겼다. 100포기가 두 쪽으로 잘렸으니 200개 정도의 배추를 차곡차곡 쌓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매년 해오던 막내 삼촌이었기에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배추탑을 쌓은 것이다.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나는 배추만 씻고 들어와 누워버렸다. 그런데 밖에서는 김칫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친정 찬스라는 게 참 좋은 거지. 이럴 때 눈치 보지 않고 누워있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귀만 열어둔 채로 눈을 감았다.


7시가 되어 아침을 먹고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서울에 고3 딸을 두고 온 이모는 마음이 바쁘다. 재빨리 아침을 먹더니 혼자서 열심히 김치를 만들어 통에 넣기 시작했다. '우리도 나가서 할까?' 했지만 '아직 대장님이 나가지 않으셨는데 가서 뭐해, 기다려' 남편의 얘기를 듣고 보니 아직 엄마는 주방에서 김장에 필요한 준비들을 하느라 바쁘셨다.


우스갯소리로 남편이 말했지만 우리 집 김장에서 '대장'은 엄마다. 장녀로 태어난 엄마는 외가 일에서 언제나 동생들을 진두지위하는 대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자라오셨다. 어린 나이에는 동생들을 위해 학교가 아닌 공장으로 나가 돈을 벌어다 친정에 가져다주시더니, 나이가 드셔서는 동생들 김치까지 해서 먹이는 제대로 된 K-장녀가 아닐 수 없었다.


올해 김장에서도 엄마는 마음 한쪽이 뜨끔하다. 막내 여동생에게 김장 김치를 주고 싶은데 여러 형편으로 인해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모가 재빠르게 본인의 김치통을 채우고 서울에 있는 딸에게 밥을 해주기 위해 짐을 싸서 먼저 떠났다. 아직 엄마의 김치통은 채워지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김치 줄테니까 어서 와서 가져가'. 수화기 너머로 반가워하는 이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깔끔하고 일 잘하는 남편과 막내 삼촌 덕분에 김장의 뒷마무리가 완료되었다. 수육이 맛있게 익어갈 즘 막내 이모가 김치통을 들고 왔다. 일이 있어서 미리 오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한 뒤 비어 있는 통에 김치를 채워 넣었다. 새로 산 옷에 김치 양념이 묻든 말든 입에는 한가득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막내 삼촌과 우리 집은 엄마의 김치를 꼭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막내 삼촌은 처갓댁에서 받는 것이 많았고, 우리 집은 시댁에서 담가오는 김치를 먹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년 이천에 김장을 오는 것은 힘든 엄마를 위해서다. 물론 김장을 했으니 나도 김치를 한 두 통 들고는 간다. 하지만 14통씩 채워가는 둘째 이모만큼 엄마의 김치가 우리 집 김치 냉장고에 큰 비율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양념값을 엄마와 나눠서 부담하는 둘째 이모는 김치를 많이 담아가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김장을 담그는데 양념값은 극히 일부이다. 아빠와 엄마가 심은 유기농 배추와 무가 없다면? 대식구가 오면 숙박에 식사를 대접하는 엄마는 곱절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김장을 하는 것이다.


김장이 끝나면 엄마는 항상 말씀하신다. '내년에는 우리 먹을 만큼만 해야지'. 내가 먹을 만큼만 배추를 심어서 외동딸인 나에게 줄만큼만 김치를 담가도 된다고 매년 말은 하시는데, 올해도 K-장녀인 엄마는 외할머니, 삼촌들과 이모들 모두에게 김치를 주었다. 김장이 끝나고 다음날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 괜찮아?"

"죽겠어, 몸보다 신경을 많이 써서 힘들었네"

"내년 김장은 어쩌려고 그래"

"내년에는 우리 먹을 것만 해야지, 힘들어서 안 되겠다"


정말 내년에는 엄마의 김장만 하게 될까? 일 년 뒤의 일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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