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 만에 락스 청소를 결심한 이유는

화장실 매트와 헤어질 결심

by 친절한금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참는다는 말보다는 모른 척 어물쩍 넘기려던 게으름에도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화장실 바닥을 가득 채웠던 핑크빛 매트 아래 음흉하게 공존하는 곰팡이들을 더 이상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아니, 내가 병에 걸리는 일이 더 빠를 것이라는 판단하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얀 강마루 바닥에는 알록 달록 매트가 깔렸고 화장실 회색 타일 위로는 핑크색 화장실 매트가 도배되었다.


모든 것이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화장실은 아이들이 넘어졌을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바닥 전면을 매트로 깔았다.


화장실 매트를 가장 반겼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니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이 방처럼 주저앉을 수 있고 여느 방과 다름없이 들락거리는 편한 공간이 되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화장실에 있어도 자빠질 염려가 없어서 부모로서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편함의 배후에는 물 때와 곰팡이라는 강력한 적이 숨어 있었다.


아무리 배수가 잘 된다 하더라도 맨바닥 위로 무언가 하나 걸쳐있기 때문에 습한 화장실 바닥이 온전히 마르기 힘들었다. 그래서 물때가 생기기 전에 발이 닿는 면을 샤워할 때마다 솔로 청소했다. 더불어 타일 바닥면을 청소하기 위해 무거운 매트를 뒤집어 닦고 덮어 두는 일을 반복해 왔다.


매트를 사용한 지 8년이 다 되어가니 아이들의 물놀이 시간이 줄어가면서 청소에도 소홀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매트 위로 검은 물때가 보여야 만 솔을 들고 문지르는 지경까지 간 것이다. 이쯤 되면 닦여진 물 사이로 미역조각처럼 덩어리 진 물때들이 나온다. 어떨 때는 이것을 보기 위해 화장실 청소를 참고 기다렸다 싶기도 했다. 물때 덩어리가 커질수록 청소의 희열이 높아진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트 사이 끼어 버린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매트를 뒤집어야 만 집을 수 있기에 들춰본 타일 바닥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회색 타일이었는데 누가 검은 크레파스로 낙서라도 한 듯 화장실 바닥에 곰팡이가 퍼져있었다. 매트 윗 면을 아무리 청소해 봤자였다. 매트가 무거워서 다음으로 미루고 미뤘던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락스는 몸에 해롭다는 생각에 샴푸를 조금 풀어 솔로 문지르며 청소해 왔지만 이번에는 샴푸 한 통을 쓴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마트에서 락스를 샀다. 그리고 욕실화 3개를 골랐다.


청소를 위한 도구를 사고 나니 뒤에 동작들은 일사천리였다. 일단 화장실 매트는 베란다로 옮겼다. 매트를 걷어낸 자리에는 아이들의 머리끈, 과자 부스러기, 스티커, 머리카락 등 온갖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이런 것들 위를 맨발로 다녔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락스형 세제를 뿌려 온 힘을 다해 솔을 문질렀다. 힘들 줄 알았던 화장실 청소는 매트가 없는 바닥을 슥슥 청소하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었다. 뽀얗게 거품이 일어난 화장실을 바라보며 샤워기를 잡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드라마틱하게 곰팡이가 사라진 타일을 기대하며 물을 뿜었다.


와...


얼마 만에 보는 맑은 회색빛 타일이던가. 타일 사이까지 완전히 새하얗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타일면의 곰팡이는 거의 사라졌다. 마무리하고 환풍기를 돌리며 화장실의 물기를 바짝 말렸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고 좋아하거나 새로 산 욕실화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을 기대하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제일 먼저 화장실을 본 막내가 탄성을 자아냈다. '와 깨끗해!' 막내의 리액션에 뿌듯함이 추가됐다. 뒤에 들어온 큰 아이의 답변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새로운 신발은 좋은데.. 매트는..? 이제 귀찮게 신발 신어야 해?.. 매트 다시 해 줘..."


순식간에 고민이 쌓였다. 거진 10년 만에 맨바닥을 보고 쉽고 청결하게 화장실 관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떡하라는 거지..


베란다에 내다 놓은 화장실 매트를 보러 갔다. 사이사이 물때가 그대로 있는 매트를 보고 정신이 들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컸으니 과감하게 '화장실 매트와 헤어질 결심'을 할 때였다. 마음이 변할까 싶어 재빨리 가위를 들어 이 결심을 굳히기 위해 자르고 또 잘랐다.


3조각을 9조각으로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화장실 매트는 PVC소재이기 때문에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야 했다. 일반쓰레기봉투에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각으로 잘라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결심의 결실을 위해 부단히 손을 움직여야겠다.




일반 쓰레기 봉투를 큰 것을 사서 버리려 했더니 폐기물에 속해 폐기물 봉투에 버리거나 경비실에서 폐기물 스티커를 발급받아 폐기하라고 했다. 오늘처럼 더운날 슈퍼와 경비실을 오가는 수고를 했지만 쓰레기를 제대로 알고 버릴 수 있었다. 혹, 나와같이 PVC 같은 재질을 플라스틱으로 오해하시고 분리수거하는 일이 없으시길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