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핸드폰의 켜서 웹툰을 연다. 그림체가 다를 뿐이지 뻔한 전개를 알면서도 핸드폰 위로 올라간 손이 웹툰 앱으로 향한다. 한결같은 스토리는 두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한 채 상처 주는 일들을 반복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초반에 이어진다. 많은 역경을 겪고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뒤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최근 본 웹툰은 여기에 '회귀'라는 아이템을 접목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송중기가 회귀하여 주식과 땅에 미리 투자해 성공을 거머쥐는 스토리와는 결이 다르다. 좋아하지만 오해로 인해 갈등을 빚고 있었던 주인공 중 하나가 죽게 되면서 회귀하게 된다.
다시 한번 삶이 주어진 주인공은 같은 인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배신했던 애인이 있었다면 그와 엮이지 않고 복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다시 한번 사는 인생에서 지난날의 나와 다르게 살기 위해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솔직함은 주인공들을 둘레길이 아니라 사랑의 지름길로 인도한다.
몇몇 회귀 작품을 보다 보니 궁금해졌다. 나에게 회귀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이를 낳기 전으로?
결혼하기 전으로?
남편과 우연히 마주쳤던 치킨집을 지나쳤던 후문이 아니라 아파트 정문으로 갔어야 했을까?
남편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회사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취업을 했어야 했을까?
대학생으로 돌아가 어학연수를 해야 했을까?
회귀를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아쉬움이 남는 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삶에 만족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까? 백 프로 만족하는 삶은 아닐지라도 후회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해외여행 한 번 스스로의 힘으로 해보지 않았던 것에 미련이 남는다.
두 번째는 단연 '남편'과의 만남이다. 반드시 바꾸고 싶은 과거를 물었을 때는 망설임 없이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을 바꾸고 싶은 건 아니다.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여 '과연'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할 뿐이다. 싸이의 노래 제목처럼 "어땠을까"하는 상상들의 나래들이 펼쳐진다.
취업을 그곳에 하지 않았다면, 첫 출근했던 그날 후문에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취하는 곳을 그와 같은 아파트로 정하지 않았다면, 출근하는 엘리베이터에서 그의 피존 향기를 맡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니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묵힐수록 좋은 것이 장맛이라면 남편의 가치는 살면서 깊이를 더해간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남편을 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와 하는 매일은 항상 버라이어티 하고 충격적인 날도 있지만 대체로 재밌다. 인생이 쉼 없이 지루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웹툰 속 남자 주인공 같다. (재벌이라는 설정은 빼고 ㅎㅎ.)
이층침대를 반으로 잘라 일층침대로 만드는 일, 서랍장을 잘라 거실에 옮긴 일,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기계를 사준 일, 코로나 시절 거실에 인덱스 풀장을 설치해서 아이들을 놀게 한 일, 탁구공 속에 팔찌를 숨겨 선물한 일 등 그와 있으면 별별일들이 넘쳐나서 스크롤을 끊임없이 내리게 하는 웹툰 같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극명하게 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철저하게 계획하는 성격과 닥치는 대로 일을 헤쳐나가는 남녀의 만남이 순탄할 리 없었다. 심지어 그는 사투리 가득한 경상도 남자다. 연애 때부터 우리는 주로 '말'때문에 싸웠다. 사투리에 저음으로 얼그러진 남편의 말을 못 알아들어 다투는 일이 허다했다.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 다시 물어보면 될 텐데 나는 항상 대충 얼버무려 이해하고 대답했다. A를 물어본 남편의 질문에 B로 답한 결과로 얽힌 말의 실타래가 둘 사이를 더 꼬이게 만들었었다.
최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우스운 사건이 있었다. 시누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꽃게를 사기 위해 수산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집에 있던 남편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정신없는 와중에 받은 남편의 전화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들렸다.
'x동 사래이'
'머??'
'x동 사래이'
'매형 똥사냐고?'
순식간에 차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운전을 하던 시누 남편은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었냐며 당황한 말투로 말을 했다. 꽃게를 냉동으로 사라는 '냉동 사래이'라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번 해프닝에서 최대 수혜자는 시어머니였다. 배꼽이 빠지게 웃으신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들릴 수 있냐며 시간이 지나서도 웃음을 그치지 못하셨다.
10년간의 결혼 생활을 이어오며 이 정도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내가 얼마나 그의 말을 못 알아듣는지, 남편이 하고 싶은 말이 이어지지 않아 얼마나 답답했을지 이해했다.
결혼은 서로 같은 사람과 하는 것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만나야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반박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하듯 10년을 정반대의 남자와 부딪히며 살았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너무 달라서 정말 힘든데, 왜 달라야 잘 산다는 것일까.
가장 미스터리한 것은 나의 태도이다. 어디 가서 애교라면 빠지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무뚝뚝하게 구는 것이 남편이다. 마치 웹툰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내비치지 못하는 내가 의뭉스럽다. 시아버지 시어머니에게는 사랑한다는 말도 척척하는 내가 왜 남편에게는 돌부처가 되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삐걱거리는 톱니바퀴가 있다. 돌아가는데 문제는 없다. 잠시 덜컹거릴 뿐이다. 이것 또한 10년 동안 쉬지 않고 이를 맞물려왔기에 처음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앙숙처럼 물고 뜯으며 서로의 속을 들여다보았던 긴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은 없을 것이다. 현재 남편을 잘 알게 돼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남편은 나에 대해 알 계기가 없을 테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부질없다.
앞으로도 삶이라는 페달을 밟아 전진할 뿐이다. 남편과 나 사이에 회귀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결론으로 생각의 끝을 마무리 지어본다.
다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가 쌓여가는 웹툰 속 주인공처럼 되지 않기 위해 태도를 바꾸고 싶다. 시간이 지난 후에 오늘이 과거가 되어 후회로 남아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떠올리지 않게 해야지. 부끄럽지만 남편에게 애정한다는 표현을 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휴.. 남편인데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