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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May 16. 2023

미안한 막내의 소풍 도시락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걱정 가득했던 첫째의 소풍 도시락과 달리 막내의 소풍날은 모든 것이 평온했다. 아니 소풍 도시락보다 급한 것이 있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시부모님과 시동생 식구들이 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청소의 마무리가 무엇보다 급했다. 끝날 것 같은 청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막내의 소풍 도시락은 7시가 돼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째 도시락을 싸고 보니 김밥과 유부초밥 두 종류를  필요는 없었다. '해 봤더니' 남은 부재료만 많아질 뿐이었다. 더군다나 막내는 김밥보다는 유부초밥을 좋아했기에 곰돌이 유부초밥에 올인하기로 했다.

 

밥통에는 어제 한 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데워서 해도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오전 중에 쉴 것 같은 느낌에 급하게 밥을 안쳤다. 고슬고슬 익은 밥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유부초밥에 들어있던 식초만 넣고 슥슥 밥을 비볐.  곰돌이 유부초밥의 하이라이트인 눈과 볼터치를 위해 알록달록 깨소금과 마른 당근은 밥에 넣지 않았다.


늘 하던 유부초밥이라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곰돌이를 완성시키는 눈과 코 그리고 볼터치! 뭉뚝한 손 끝으로 알록달록 깨소금 속에서 검은깨만 골라내 눈을 만들었다. 내 맘과 달리 삐뚤빼뚤 붙어 버리는 검은깨보다 얄팍하지 못한 내 손 끝이 더 야속했다. 치즈를 잘라 입 주변 하얀 부분을 만들고 귀까지 잘라 붙였다. 이제 코만 만들면 되는데 김밥 키트를 사지 않아 김밥용 김이 없었다.


번뜩 냉동고 안에 있는 돌김이 생각났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돌김을 자르는 순간 깨달았다. 돌김은 김밥용 김과 달리 가위로 자른 단면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 심지어 치즈 위에 올려진 김이 수분을 머금어 그나마 만들어 놓은 모양이 흐물흐물 망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잇몸으로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


'엄마 나도 할래"


뭉뚝한 손끝으로 정교함을 흉내 내던 나에게 첫째가 다가왔다. 엄마가 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곰돌이 유부초밥의 눈코입을 만들고 싶다며 조르기 시작했다. 막내도 언니를 따라 본인 도시락의 눈코입 붙이기에 나섰다.


첫째는 큰 주방 가위를 들고 김과 치즈를 조그맣게 자르는 섬세함을 보여줬다. 곰에게 이빨이 있지 않냐면서 생쥐에게나 있을 것 같은 큰 두 이빨도 곰돌이에게 붙여줬다.


반면 막내가 만든 곰돌이 유부초밥의 눈은 삐뚤빼뚤 한 것이 마치 삐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면 화난 것 같지 않아? 언니가 더 귀여운 모양으로 도와줄게"


옆에서 바라보던 첫째가 막내의 곰돌이 유부초밥의 모양을 조금 더 깜찍하게 봐주었다. 


유부초밥 8개가 들어갔지만 빈 공간이 생겨 허전한 부분이 생겼다. 프라이팬을 달궈 베이컨을 바삭하게 구워 프릴장식처럼 켜켜이 접어 채웠더니 제법 근사한 소풍 도시락이 완성됐다.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만든 작품 같아서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제 도시락 뚜껑을 닫기만 하면 올해 소풍 도시락은 끝이다. 그런데..


뚜껑 위에 첫째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가. 3초의 망설임 끝에 스티커 떼기 좋게 기른 손톱으로 첫째의 이름 라벨지를 떼어냈다. 그리고 라벨지 뗀 자리가 티 나지 않도록 막내 이름을 고스란히 붙였다. 이제 됐나? 싶었는데 도시락 본채 두 곳에도 첫째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우습지만 "탁탁탁" 손톱으로 첫째의 이름을 떼어내고 막내의 이름을 덮어 도시락 통의 새 주인을 만들어 주었다.


매일 쓰는 물건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쓰는 도시락 통이다 보니 막내의 것은 따로 지 않았다. 첫째 때에도 소풍 도시락을 새것으로 사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가는 소풍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에 급하게 마트에서 도시락 통을 샀던 것이다.


준비한 간식까지 모두 챙기고 마지막으로 물통을 꺼냈다. 물을 넣고 뚜껑을 닫는 순간 '아...' 탄성이 흘러나왔다. 두 딸에게 같은 물통을 사줬건만 하필 설거지가 되어있던 것은 첫째의 물통이었다. 막내의 물통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시간도 없었다.


나는 다시 손톱 끝을 세웠다.


여기저기 내 것이라고 존재감을 뽐내던 첫째의 라벨지를 떼고 막내의 이름을 붙여 넣었다. 속으로 궁상맞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임기응변에 강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엄마, 도시락 진짜 맛있었어! 친구한테도 하나 나눠줬어"


유부초밥의 양이 꽤 많았음에도 말끔하게 비워진 도시락 통을 보자 뿌듯한 마음이 가득했다. '해 봤던' 소풍 도시락이라서, 곧 시댁 식구들이 오기 때문에 청소에 더 마음을 썼던 막내의 도시락은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는 것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막내의 소풍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 대한 불안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것도 어쩌면 소풍 도시락 싸기와 같지 않을까.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은 아니기에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지만 '엄마도 처음이라 그래'를 지나서 마주한 막내에게는 미숙하지만 베테랑 느낌을 풍기는 엄마로 서게 된다.


설렘과 불안에 의한 부담감이 적어서 마치 신경을 덜 쓴 것 같아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막내의 도시락이었다. 특히 새 도시락을 사주지 못하고 언니의 이름표를 뗀 자리에 막내의 이름을 덧붙이는 순간 마음이 더 쓰였다. 하지만 도시락을 보고 좋아할 너를 생각하며 무딘 손으로 정성을 다 한 것임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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