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를 가고 나니 휴일에 더 민감해진다. 유치원 때와 달리 아무 때나 편하게 쉴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5월은 연휴가 많아서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그런데 6월이 되자마자 징검다리 연휴를 마주할 줄이야.
이번 연휴에 가장 큰 수혜자는 엄마인 '나'였다.
6월 5일 월요일에 쉬는 회사와 학교가 많았지만 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은 샌드위치 휴일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남편의 회사는 연속으로 쉴 기회를 줄 테니 6월 6일을 근무일로 정했다.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아이들 없이 쉬는 날을 두 팔 들어 반길 테지만 우리 집에 사는 남자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회사는 왜 아이들과 쉬는 날을 맞춰주지 않는 거야'
투덜거리는 남편 뒤에서 수요일이 되어야 월요일 같은 휴식을 마주할 수 있는 나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화요일까지 나에게는 휴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에게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작용하는 그들의 휴일이 썩 반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심각한 고민 뒤 숨 쉴 구멍을 찾아 합리화 했다. 서로 휴일이 어긋나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는 남편을 신경 쓰지 않고 밥을 해도 된다는 꼼수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남편의 입이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남편의 식사 여부에 따라 계란밥에 김치만 올려도 되는 간단한 밥상이 식사를 위한 차림새를 갖춰야 한다는 현실에 마음이 가벼워졌던 것이다.
월요일이 되어 아이가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더니 아이의 손을 잡고 나간다. 4인 가족이 손을 잡고 다 같이 큰 아이의 등굣길을 배웅하려고 했지만 급한 화장실 일 때문에 문 틈 사이로 사라지는 아이를 향해 세차게 손을 흔들고 큰 일을 보러 뛰어갔다. 의도치않게 남편에게 아이의 등교를 맡긴 셈이 된 것이다.
월요일에는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큰 아이가 등교한 사이 막내를 등원시키고 바로 모임에 갈 생각으로 화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막내는 몇 시에 나가면 돼?"
5분 뒤에 나갈 것이라 이야기하며, 눈썹 끝을 신중하게 그리고 있는 귓속으로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남편이 막내를 데리고 다녀올 테니 어서 가방을 챙겨 달라고...
'응?'
남편은 혼자서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성향이다. 어디를 가든 나를 핸드폰 들고 가는 것처럼 옆에 붙이고 다니기 일쑤였다. 심지어 막내와 단둘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 큰 어색함을 표하던 사람이 다 큰 어른처럼 씩씩하게 하는 말에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이 함께 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등원을 하고 사라진 9시부터 편하게 집안을 정리하고 모임에 나갈 수 있었다. 매번 지각하던 모임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는 영광까지 거머쥐었다. 한창 모임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이들 하원 스케줄 좀 알려줘]
눈치가 보이지만 남편에게 다급하게 글을 적었다.
12시 40분 피아노 차량 타고 피아노 감
1시 57분 피아노 학원 앞으로 가서 큰 아이를 차로 태워 영어학원에 데려다줄 것
2시 30분 같은 건물 유치원에서 막내를 태워 집으로 올 것
3시 5분 태권도 차량이 막내를 태우러 옴
3시 55분 큰 아이 영어 학원에 태우러 감
4시 40분 집 앞에서 태권도 차량에서 내리는 막내를 맞이할 것
5시 15분 큰 아이 발레학원 걸어서 데려다줄 것
6시 20분 발레 학원이 마치면 집으로 데려 올 것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핫도그를 데웠다. "책가방에 있는 필통을 학원 가방에 넣도록 이야기 전해줘"라는 간단한 지시사항을 숙지한 남편이 큰 아이를 데리러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모임 후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픽업할 생각이었다. 예상을 벗어난 남편의 픽업 대행사 덕분에 모임 후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빨래를 개며 여유롭게 티브이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가는 일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 들지만 아이 둘의 학원 픽업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초보운전인 나에게는 특히 더 한 일이다. 남편 찬스로 에너지를 충전한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 왔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지인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식사자리에서 뜻밖의 말을 듣고 박장대소를 하고야 말았다.
"어제 제수씨 대신 아이들 픽업하면서 많이 힘들었나 봐요, 그동안 제수씨가 고생 많았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츤데레 아니랄까 봐. 자기 속내를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지인이 그의 뜻을 전달했다. 이 말이 뭐라고 나는 박수를 치고 웃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가방끈이 길면 무엇할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은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 등하원을 하는 것이 전부다. 이럴 거면 비싼 학비 들여서 왜 공부한 것인지 의심이 됐다. 무엇보다 집 안에서 나의 위치가 중요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많은 불안감을 끌어안고 있었다. 설거지가 쌓여 있는 와중에도 글을 쓰고 있을 때, 빨래가 한가득인데 취미인 그림 그리기를 할 때면 죄를 짓는 것처럼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눈치가 보였다.
남편도 내가 이 정도로 힘들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엉덩이를 붙일라치면 일어나서 나가야 하고 무언가를 진득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을 남편이 느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떨어지는 체력을 공감했다.
본의 아니게 역지사지를 경험하면서 어부지리로 남편에게 인정을 받은 휴일 이었다. 시부모님과 부모님이 매번 '힘들지?네가 고생이 많다'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살 부대끼며 살고 있는 남편에게 듣는 인정의 한 마디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결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입지가 단단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없다면 아이들은 배우고 싶을 것을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할 것이다. 대치동에서는 픽업과 간식을 챙겨주는 일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지불한다고 들었다. 비록 나의 경력과 맞바꾸었지만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아이들을 직접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접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다만 나에게 '확신'이 필요했는데 자기 확신을 떠나 남편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전보다 살림할 맛이 난다. 아니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꼭 필요하고 결핍이 되면 위태로워질 수 있는 나의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며 가족이라는 나무를 잘 키워나갈 힘을 얻었다.
5년전 남편이 직접 문구를 넣어 선물한 수면등, 그리고 내 마음에 새겨진 한마디 '난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