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헤어지자, 내 손안에 습진

지긋지긋한 한포진 18년

by 친절한금금

취미로 디지털 드로잉을 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킨더줄리에서 스텔라와 그림산책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왔다. 최근에는 사탕을 들고 있는 손을 그렸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손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직도 드로잉 초보인데 사람의 형태라던지 손같은 세부적인 그림은 막막한 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하나하나 그리면서 얼추 형태를 갖춰가니 제법 사람 손 같은 모양이 나왔다. 그런데 매끈한 여자의 손이 아니라 투박한 손가락이 사탕을 움켜쥔 것이 나의 손과 닮았다. 그림이기 때문에 평소에 하지 못하던 네일 아트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림에서조차 손톱에 색을 입힌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했다.



평소 손톱에 알록달록 색을 입히지 않는 이유는 18년을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습진 때문이다. 한포진이라고도 불리는 피부질환은 대학교 4학년 때 발생하여 아이를 둘씩이나 낳고 키우는 지금까지 헤어지지 못한 채 동거하며 지내고 있다. 얄미운 녀석. 손톱만큼의 자리도 내어주고 싶지 않았는데 손바닥 전체를 장악해 뇌까지 신경을 침투하는 습진이 정말 사무치게 밉다.


유전적인 이유는 없었다. 부모님 모두 피부가 깨끗하셨고 고등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할 때까지도 건강에 관한 질환은 생각할 수 없었다.


손에 빨간 자국과 몽글한 물집들이 영역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전공을 선택한 순간부터였다. 종이를 공부하는 일은 직접 수초지를 제작하는 실실험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물에 섬유를 풀어 채에 걸려 종이를 만드는 것이 가장 기본이지만 강도를 향상하기 위한 첨가제가 들어가고 각 첨가제의 영향을 평가하는 실험들을 해야 하는 일을 자주했다. 큰 통에 섬유를 물에 푼 것, 즉 묽은 종이죽에 맨손을 넣어 비커에 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미용 하시는 분들이 강한 약제가 손에 닿아 피부질환이 많은 것처럼 나의 직업을 위한 일이 질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습진이 생긴 이유에는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실험을 반복하며 망가진 바이오리듬, 잦은 음주와 불규칙한 식습관이 손에 닿는 첨가제만큼이나 내 몸속에 악을 첨가하고 있지는 않았나 뒤돌아본다. 부모님 밥을 먹거나 규칙적으로 식사 할 때는 생기지 않았던 것들, 질병이 발생한 후 큰 차이점을 돌아봤을 때 손꼽히는 안 좋은 습관들이 뻔히 보인다.


피부과를 갔으나 받아오는 약은 항상 같았다. 복용하는 스테로이드와 바르는 크림 약인데 불난 집에 물을 끼얹어 불길을 잠재웠다 뿐이지 완전히 잡히지 못한 불씨가 다시 싹을 틔워 또다시 뜨겁게 손을 달구곤 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피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통증, 가려움에 살짝 긁기라도 하면 얇은 풍선막이 터지듯 갈라지는 피부 그리고 맺히게 되는 피를 닦아 낼 때 설움이 쌓인다. 긁으면 긁을수록 굳은살이 쌓이고 이를 또 가만히 두지 못한 채 뜯어내 온전히 살이 되지 못한 투명한 핑크색 살이 빼꼼히 드러낼 때의 통증에 몸도 마음도 쓰라린다.


혼자만 아프면 좋은데 불편을 겪어야 하는 건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급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물로 손이 저절로 간다. 예를 들면 젖 먹이 아이가 똥을 쌌을 때 생각의 겨를 없이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은 물로 엉덩이를 씻기고 있다. '아' 밖으로 내뱉지 못한 탄성이 나오고 뇌를 타고 전달되는 통각에 힘겨워하며 아이를 씻긴다. 손이 찢어졌을 정도라면 각질이 손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맨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딸의 엉덩이를 씻겨주면 좋으련만 나무 수피처럼 거친 손으로 아이를 만진다는 죄책감이 매일 나를 애워쌌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방도를 취했던 것 같다. 친정 엄마는 쌍화탕 한 병에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를 담아와 발라보라고 하셨다.


"고모가 그러는데 계란 껍데기를 태운 액을 바르면 낫는데... 계란을 3판 썼어"


엄마가 해주신 정성에 비례하여 나을 줄 알았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시어머니 또한 안쓰러운 며느리의 손을 보시고는 동네 유명한 한의원에 손잡고 데려가 보약을 지어주셨다. 잠시 호전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이도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약국에서 생약 성분으로 만들었다는 약과 크림, 한의원에서 만든 크림을 발라봐도 소용은 없었다. 프로폴리스를 바르거나 먹으면 좋다는 말에 손을 긁어 난도질되듯 찢어진 손을 시아버지가 주신 프로폴리스액에 담그며 고통스러운 통증이 완치의 길이라 믿고 반복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어 결국 피부과 약을 이틀 치 먹고 나서야 매끈한 맨 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일하게 18년 동안 손이 깨끗한 시간이 있었다면 '임신'을 했을 때였다. 첫 째를 임신할 때에도 많이 힘들었다. 프로폴리스로 치유하겠다면서 자학하듯 손을 걸레처럼 만들었는데 임신과 동시에 내 손안에 습진은 하숙생이 방을 뺀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출산 후에도 유지되던 나의 손에 습진이라는 하숙생이 돌어온 것은 '치킨'을 먹은 순간부터였다. 바닷속에서 청정하게 자란 미역만 먹으며 피를 맑게 하다 기름에 튀긴 인공의 감미료가 들어간 순간 습진이 찾아올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 거였다.


말도 안 되게 둘째를 가졌을 때도 습진은 없었다. 다만, 둘째를 임신 했을 때는 만삭되는 시점에 소양증이 찾아와 손보다 힘든 피부질환으로 고통받아야 했고 이는 출산을 하면서 완치되었다. 소양증이 가고 습진이 다시 오긴 했지만 온몸을 뒤덮은 소양증보다는 국부적으로 손을 뒤덮은 습진이 오히려 견딜만했다.


습진이 걸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다 보면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겨울에만 습진이 찾아온다는 사람, 여름에 유독 힘들다는 분, 음식에 따라 발생되는 성향이 다르다고 했다. 나의 습진에는 '생리 주기'에 큰 영향을 받는 특징이 있다. 배란통, 생리통을 온몸으로 겪는다. 기분이 좌우되거나 폭식의 시기를 거치기도 하지만 유독 손이 가렵거나 붓는다. 피부과를 가서 호르몬이 습진 혹은 한포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냐고 물어보지만 아토피로 치부하며 전혀 관계없다는 말들만 듣는다.


하지만 의사보다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것이 나이기 때문에 내 습진에는 분명 '호르몬'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알았으면 고치고 싶다. 하지만 아직 생리 전증후군도 원인은 알았지만 깨우치지 못한 것처럼 내 손안에 흡진도 아직 내쫓지 못하고 있다. 사실 포기에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피부과, 한의원도 다녀봤고 좋다는 로션도 사봤으나 차도가 없어 이제 그만하자며 완치 의지를 삭혀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손 그림을 그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서 처럼 내 손도 붉은 기 없이 매끈해질 수 없을까?"


그림을 그린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소망을 표출하고 의지를 다지는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렸던 손 그림에서 막연히 떠오르던 생각을 글로 적으며 마음속으로 다진다.


이제 그만 긁고 싶다.

매끈한 손으로 아이들을 만지고 싶다.

로션을 발라줄 때 '엄마 손 아파'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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