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번개가 치는 날

by 친절한금금

휴가를 위해 부산에 있는 시댁을 가는 중이었다. 문경을 지나는 길에 구름이 전시회라도 하듯 다양한 형태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넋을 놓고 하늘이 보여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 먹구름 속으로 차가 들어섰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 이제 장마는 없고 무더위가 온다고 했던 뉴스를 잘못 본 걸까. 한낮의 강한 햇볕에 녹아들었던 몸이 가뭄에 맞이한 단비를 만난 것처럼 생기를 찾았다. 꿉꿉하고 묵직한 더위가 아니라 상쾌한 차 안에서 소나기를 맞이했기에 좋았을 뿐. 지나가다 맞은 비였다면 오늘 하루의 운이 안 좋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강렬한 해를 지나 갑작스러운 비속을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만난 하늘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번뜩임이 있었다.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의심을 거둬버릴 날카로운 빛이 하늘을 밝게 비췄다.



자는 딸을 위해서 동영상을 찍어봤다. 비는 오지 않는데 마른하늘에 번개라니.. 오늘의 기이한 현상은 기록적인 폭염 때문이라고 했다. 번개가 땅으로 쳐야 천둥소리가 나는데 지표면이 뜨거워져 대류현상이 활발해졌고 구름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번개가 땅까지 닿지 못한 것이라고 뉴스에서 봤다.


오랜 시간 치던 마른번개는 어두운 하늘에서 펼쳐지는 형태 없는 라이트 쇼였다. 불규칙하게 펼쳐지는 플래시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문득 친정 아빠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간 첫 해, 13살의 여름이었다. 밤이 늦어야 볼 수 있던 아빠를 해가 떠있는 여름 저녁에 뵐 수 있는 여유로운 시골생활에 익숙해질 때,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는데 마당에서 아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 마른번개가 치는구나"


아빠는 번개를 구경하기 위해 옥상으로 갔고 신난 나는 강아지처럼 그 뒤를 졸졸 쪼았다. 이사 간 주택에는 옥상이 있었다. 한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간직한 옥상에 올라 하늘을 보니 누워서 편히 구경하고 싶어졌다. 한 겨울에 나 깔고 잘 수 있는 등이 베기지 않는 두꺼운 이불 하나를 들고 올라갔다. 폭삭한 이불 위에 몸을 기대니 보일러를 틀기라도 한 것처럼 등을 따스워졌다.


한참을 옥상바닥에 아빠와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쇼타임. 마른번개가 쉴 새 없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어두운 하늘을 번쩍 비췄다가, 검은 칠판에 아이가 삐뚤빼뚤 선을 그은 것처럼 내리치는 형태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소리 없는 번개를 보니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일반적인 것을 벗어나 설렘을 가져다주는 이색적인 현상에 취해버린 순간.


텅 텅 텅


초록 페인트를 칠한 철제 옥상 계단으로 엄마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들고 한 손은 넘어질까 계단 봉을 꼭 잡은 채 마른번개 쇼가 한창인 옥상에 입장한다. 팝콘각이었지만 습기가 꽉 찬 옥수수를 보고 있자니 달큰한 노란 알맹이들을 씹을 생각에 침이 고였다.


부녀가 함께 있는 모습이 정겹다는 듯,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자식이 하나지만 바쁘셨던 아빠와 보낸 시간이 적었던 만큼 정이 쌓일 틈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손녀를 위해서라면 앉아서 식사를 하시다가도 "우리 손녀 이거 음료수 좋아하지?" 하시면서 벌떡 일어나 가져다주시지만 어릴 적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다.


90년대 아버지가 그러하듯 재떨이 심부름, 물 심부름, 리모컨 심부름 등 아빠 말씀이 법인 것처럼 살았다. 엄하게 하신 건 아니지만 가부장적인 틀 안에서 보이지 않는 수직의 거리감이 존재했다.


마른벼락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요즘 세대들이 캠핑장에서 느낄 수 있는 추억은 나의 유년시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와 일상의 공유가 부족했던 찾아온 마른벼락은 아빠와 딸 사이를 밝게 비추는 한줄기 섬광이었다.


폭염과 폭우는 싫지만 장시간의 마른벼락을 감상했던 그날의 향수가 아직도 은은하게 퍼진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향에 취해 시댁에 가는 차 안에서 마른벼락을 한없이 바라보며 아빠와의 추억을 돌아보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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