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둔 걸 잊은 채 차 안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아이에게 말했다.
"차 안에서 비 내리는 걸 보다니, 참 좋지 않니?"
에어컨을 잠시만 틀어도 쾌적한 공기를 접할 수 있고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 안락한 차 안이 좋은 이유다. 아이를 내려주고 집에 오는 길, 호랑이가 장가를 가기라도 한 것인지 거세게 내리던 비는 사라지고 해가 빼꼼히 얼굴을 내비쳤다. 집에 도착하니 세차게 내린 비로 창문 바깥에 방울방울 빗물이 맺힌 것을 보며 속으로 '비가 꽤 많이 왔었네'라고 읊조리다 바닥을 본 순간, 매트 위로 웅덩이 하나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창틀에도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이 우리 집을 향해 달려든 건지 비를 동반하여 쏟아진 소나기는 모기장을 뚫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멍하니 매트를 바라보다 주섬주섬 걸레를 들고 와 닦기 시작했다. 청소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닌지라 이런 불상사를 마주했을 때 '창문을 닫고 나갈 걸'이라는 아쉬움과 지탄하기보다는 '차라리 잘됐네'라고 말하는 편이다. 엎어진 김에 돌아가자고 물이 들이닥친 김에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물걸레 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퍼즐 매트를 깔아 놓은지라 틈새로 빗물이 스며들어 간 것을 감지하고 매트를 들어 올렸다. 순간, 보고 싶지 않은 동반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매트 아래로 곰팡이들이 강마루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이 또한 잘 된 일이었다. 덕분에 곰팡이가 더 퍼지기 전에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비 오는 날 창문을 열어두고 나간 내가 기특하기까지 했다.
매트를 깔고 산 지 8년이 지났다. 층간 소음이 걱정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이 다칠 것을 우려하여 남편은 발이 닿는 모든 곳에 퍼즐 매트를 깔았다. 기어 다니고 걷기 시작하는 모든 순간에 퍼즐 매트가 있었기에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맨바닥보다는 소음 흡수가 되는 퍼즐 매트 덕분에 화낼 일이 절반으로 줄었고, 출산으로 인해 족저근막염이 생긴 나에게 푹신한 바닥은 깔창보다 효과적인 완충제 역할을 해냈다. 바닥에 틈새 없이 매트가 깔린 덕분에 강마루를 뚫고 나오는 냉기가 막혀 난방비를 줄일 수 있었으니 이쯤 되면 퍼즐 매트를 깐 것은 신의 한 수라고 여겨졌다.
어느 날, 집안 구조를 바꾸기 위해 매트를 들어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슬며시 들춘 매트 아래는 물이 고인 것은 물론 강마루의 톱밥들이 굴러다니는 듯한 형태로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얼핏 나무가 썩은듯한 향이 느껴지는 것은 습기에 의해 강마루가 썩은 것 때문이라 지레 짐작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를 불렀다. 거실 전체의 매트를 벗겨내고 봤을 때 유독 한 곳에만 물이 고여 곰팡이가 발생되었다. 에어컨 쪽 배관에 물이 세거나 외벽으로 물이 타고 들어와 기울기가 낮은 면에 고였다던가 보일러 배관에서 새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점을 하나하나 살펴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퍼즐 매트 아래 곰팡이는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위에 다시는 매트를 깔지 않기로 했다. 혹여 깔더라도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키는 활동을 통해 습기가 머물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번에 비가 들이닥쳐 퍼즐 매트를 열어 본 곳은 곰팡이가 생기던 위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팡이가 생겼다는 건 습한 환경에 오랜 시간 강마루가 노출되어 곰팡이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기적으로 들춰서 청소하려고 했지만 게으름에 녹아버려 방치하고 있었는데 들이닥친 비 덕분에 더 커질 수 있었던 일을 막아준 것이다.
내 마음에도 나를 보호하기 위한 매트가 여러 장 깔려 있다. 비난하는 말들과 나를 탓하는 타인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기는 것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방패막 같은 매트를 조각조각 퍼즐처럼 이어 붙여 놓고 있다. 집에 깔려 있는 퍼즐이 파스텔 톤의 노란색과 회색이 교차로 섞인 것이라면 내 마음속에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같은 행위들을 엮어가며 상처를 받아 넘어져도 심하게 아프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덮어두기만 한다고 해서 상처받은 마음이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매트를 모두 빼내고 가끔 강마루에 숨을 쉬게 해주는 것처럼 배려라는 이름으로 삭히고 덮어두었던 마음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강마루에게 숨을 불어넣는 것처럼 마음에 상쾌한 바람을 불어 일으킬 수 있는 '독서'를 해야 함을 느낀다. 나 혼자 쓰고 마는 글쓰기는 일기와 다름이 없어서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좋지만 고인 물에 썩어 버리는 강마루가 되기 쉽다. 다른 이의 생각을 얻고 새로움을 경험하기 위한 독서가 절실하다.
이제 보니 매트 아래 있는 곰팡이가 그간 나의 글쓰기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놓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붓고 있는 글쓰기를 이어 오는 것에 두 팔 벌려 환영하지만 고인 물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에 젖은 매트처럼 책 쓰기 강의를 통해 마주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를 쓰려고 하지 말고 베스트 북"을 쓰라고 책 쓰기 특강에서 홍승완 작가에게 배웠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나를 위한 글쓰기에 멈춤은 없을 것이다. 내가 쓴 글의 최초 독자이자 자기 성찰에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글쓰기는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최고의 매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몇 년씩 반복해 오다 보면 습기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같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나의 글쓰기 역시 곰팡이가 생기 듯 틀에 박힌 생각과 방법에 얽매여 있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글을 쓰다 보니 책 쓰기가 하고 싶어졌다. 책 쓰기를 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인천시청에서 주관하는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특강을 들었다. 책 쓰기는 글쓰기와 다르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왜 나는 책을 내려고 하는가" "독자가 왜 나의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두 질문이었다. 나에게 뚜렷하네 나오지 않는 두 질문 사이에서 그간의 글쓰기가 나를 보호하는 역할은 하였지만 곰팡이 없이 깔끔하게 나의 바닥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기하여야 할지 마주 보게 되었다.
끊임없는 질문 속에 아직도 답을 구체적으로 내리지 못했다. 출간계획서를 쓰려면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하는데 안갯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다 마주한 매트 아래 곰팡이들이 이야기한다. 그동안 나의 글쓰기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더 나아지고 싶다면 글을 쓰기 위해 독서라는 공부가 필요하고 주기적인 환기를 하듯 글 쓰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