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부리나케 버스터미널을 향했다. 아직 6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숨이 막힐듯한 열기와 양산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햇살을 받으며 두 발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4시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이용객이 많지 않아 친정 가는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배차되었다. 5시 막차 버스표를 끊고 숨을 골라본다.
뚜루루루
신호음이 길어질 때마다 내 마음도 바삐 뛴다. 왜 이렇게 전화를 받지 않는지 애가 타지만 기다려본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의 행적을 물어보니 감자 캐는 일을 하느라 바빠서 통화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영상 통화로 친정집 밭의 상황을 보니 내리쬐는 해를 그대로 받아가며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남편이 보인다.
수업을 마치고 출발하면서 남편과 통화가 되었을 때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체감온도는 40도를 넘어섰다. 감자 캐는 일을 시작한 것은 하루 중 가장 더운 2시였다. 남편은 비오듯 쏟아진 땀이 안경을 뒤덮어 시야가 흐리다고 토로했다.
'괜히 먼저 보냈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남편이 나 없이 처가댁에 간 적이 없었다. 반면 나는 혼자 시댁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얼마 뒤 어머니가 심장 수술하시던 날 연차를 내고 5시간 거리에 시댁을 남편 없이 시누와 갔다. 어머니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신 걸 보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고 이틀 뒤 남편과 주말에 또 한 번 먼 거리에 있는 시댁을 갔었다.
벚꽃이 보고 싶어 남편 없이 버스를 타고 부산에 있는 시댁에 갔고 김장을 하기 위해 시누네 차를 타고 먼 여정을 떠나기도 했다. 며느리를 딸보다 아껴주시는 시부모님이라서 내가 좋아서 갔었다.
남편이 처가댁에 가는 것은 나와 결이 달랐다. 남편은 낯을 가렸다. 친척이 없이 핵가족으로 지내온 남편은 처갓댁 일가친척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결혼한 지 10년이 돼 가면서 남편은 몰라보게 변했다. 가족의 범위가 우리 식구였다면 시댁에서 처갓댁까지 확장된 것이다.
매년 100포기씩 담그는 양가의 김장을 남편이 챙긴 게 벌써 4년이 되었다. 신혼 때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가고 싶으면 혼자 다녀오라던 사람이 나서서 김장 일정을 챙긴다. 꼼꼼한 성격에 일머리가 탁월한 남편인지라 친정에서는 사위 덕분에 김장이 수월하다며 칭찬일색이다.
친정에서 감자를 캐는 날,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학생이라면 사정을 말하고 빠질 테지만 감자보다 강사로 서는 일이 더 중요했다. 남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수업이 마친 뒤 나와 함께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던진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애들 데리고 먼저 가 있을게, 수업 마치면 버스 타고 와"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결혼하고 남편은 처갓댁 거실에 혼자 있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를 혼자두지 못해 간난 아이 살피듯 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갓댁 식구들과 교류가 잦아지긴 했다. 하지만 남편이 나 없이 친정에 애들을 데리고 간다고? 눈앞에 실현되기까지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남편의 생각이 현실이 되자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였던가. 남편은 나를 찾지 않고 처가댁 식구들과 어울려 어색함 없이 잘 있었다. 떨어진 아이 둘보다 나의 신경에 큰 부분을 차지한 게 남편이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온다. 진짜 남편을 다 큰 애로 본 건가.
엄마는 사위가 정말 예쁘다고 했다. 일이야 원체 잘해서 한 손 엄지가 기본으로 깔리지만, 이번에 다른 엄지가 또 펼쳐진 것은 장모님이 해주신 밥을 야무지게 먹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제가 먹은 백숙 중에서 가장 맛있어요'
'상추 원래 안 먹는데 어머니 보쌈이랑 어머니가 키우신 상추가 얇아서 맛있네요'
무뚝뚝한 이 남자는 듣기 좋은 설탕발림을 못한다. 이건 찐이다. 정말 맛있어서 진심으로 얘기했고 평소보다 잘 먹는 장모님 입을 귀에 걸게 했다. 내가 해준 음식 잘 먹는 것만큼 최고의 찬사는 없으니까.
식사를 하는 도중 남편이 말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90이 넘으신 외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가시기 직전까지 자주 뵈어서인지 외할아버지가 가마솥 앞에서 불을 때시던 모습, 소파에 항상 같은 자세로 계시던 모습이 또렸다하며 외할머니에게 말했다.
남편이 왜 저러지. 요새 당황스러운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인이 예쁘면 처가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던데 내가 그렇게 예뻤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 세월이 남편을 바꾼 걸까?
결혼 초반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친척이 많은 집에서 자란 나와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란 남편이라서 가족 행사 참여 부분에서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부모님께 대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편은 양가 부모님을 챙기고 집안 대소사를 신경 쓰는 일등 신랑이 되어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기다린 결과일까?
친척이 없어서 힘든 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남편과 같은 상황에 놓인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시외할아버지 생신에 가기 싫다는 말을 듣고 남편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이해하니 어서 내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조바심이 줄게 되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잦은 만남의 시간과 좋은 추억이 쌓이면서 가족이 되어간 것 같다.
결혼 전에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 번잡스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태우고 친정에 가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홀로 버스 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더욱이 남편이 내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는 생각에 버스가 어서 빨리 그들 품으로 데려가 달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