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끝에 화음이 온다, 믿어보자

갈등 해결 방식에 관하여

by 친절한금금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예전에 나라면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편이었다. 서로 이야기하며 잘못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복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최근에는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찌 보면 '선택적 회피'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상대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잘못된 부분만 인정하고 사과하면 금세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에 만족하며 '나만 잘하면 된다'라고 여겼다.


며칠 전 늦둥이를 낳아 기르며 금쪽이를 만든 부부의 이야기가 나왔다. 글로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모자의 사이가 틀어져 버린 광경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덩치가 엄마만큼 큰 아들이 엄마를 상대로 손지검을 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금쪽이를 만드는데 엄마의 육아방식이 조금은 일조했다는 것.


금쪽이 엄마는 나와 같은 평화주의자? 성격이었다. 아들과 갈등이 생기면 엄마가 뭐든 들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봉지에 들은 물티슈를 뜯는 일, 조각 피자를 떼어내는 사소한 일도 모를 만큼 엄마는 아들의 손과 발이 되었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다잡으려는 노력보다 화가 난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았나 싶다. 받아주다 보니 고마운 줄 모르고 '나는 옳고 네가 잘못됐어, 모든 게 너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지는 않았는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자기만의 이유가 있고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평화주의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도 갈등을 분노로 표출하는 이들도 그만한 이유는 있을 테지. 하지만 한 울타리 안에서 점점 커져가는 불만 덩어리들이 얼마만큼 부풀어 오를 수 있을까? 언젠가는 터져버릴 종기 같은 고름들이 썩은 내를 풍기며 터질 시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냥 요즘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나라는 존재가 나에게나 좋지 남에게는 정말 영 아니다, 라고요. 가끔은 나라는 존재가 나에게도 썩 좋지 않긴 한데, 그래도 참을 만은 하거든요, 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102페이지


그런대로 나 자신을 참을 만 한데 남에게는 영 아닌 것 같은 마음. 내가 잘못한 부분만을 드러내다 보면 나는 남들에게 좋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갈등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대립하거나 충돌을 일으킨다'이다. AI가 아닌 이상 누구 하나 같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나. 갈등은 항상 우리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이때 무조건적으로 사과하며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방적인 사과가 이뤄지다 보면 갈등은 조기진압 될 수 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 불씨는 마른 풀잎 같은 사소한 일상 속 불만을 먹고 자라 더 큰 화마가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따져가며 싸워야 한다. 싸운다는 의미가 주먹을 겨누고 실랄한 비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소신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당당하자는 말이다.


이제는 삶의 방식에서 회피를 선택하기보다는 힘들더라도 마주해야 할 것 같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마음이다. 미안하다는 말과 자기반성으로 한쪽에서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 마주친 손뼉의 다른 한 면에게 붉어진 이유에 대해 말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마음속 목소리는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거친 대화가 예상되고 누군가 상처받을지라도 대화를 해야 한다. 생채기 정도일 때가 빠른 회복의 적기니까.


황보름 작가의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스트>의 말을 인용한 말이 와닿는다.


"음악에서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려면 그 앞에 불협화음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음악에선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도 음악과 같다고요.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라고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132페이지


불협화음이 싫다고 연주를 멈추면 화음은 나올 수 없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을 포기하면 합주는 꿈꿀 수 없다.


'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불협화음의 순간도 찰나의 시간일 것이다. 아픔을 피하려다 더 고통을 마주하지 않기를. 언젠가는 지나가는 시간 속에 현실을 직시하여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면을 보여보자.


회피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결국 맞잡은 손이 하나의 방향으로 가려면 내가 가려는 방향과 목적지를 공유해야 만 한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른 게 하는 말은 옛말이다. 선한 일도 이제는 어필해야 하는 시대이며, 누군가 무언가를 할 때는 필히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갈등 속에서 회피하지 않고 조율하는 하는 것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 틀린 음을 잡아 내고 둘 사이의 아름다운 화음을 이어갈 테니까. 지금의 불협화음에 좌절하지 않기를. 언젠가 나의 화음이 연주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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