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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Sep 07. 2023

잘하지 못해도 괜찮지 않나

현재 하고 있는 것에 작은 정성을 더하자

좋아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글쓰기, 디지털 드로잉과 같은 일들은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나와 거리가 멀다고 여겨왔던 것들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아이들과 집에 만 있으면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현관문에 경계가 쳐졌다. 그동안 유모차 하나만 있으면 아이들을 태우고 놀이터, 마트, 백화점 어디라도 다닐 수 있었던 나였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놀고 또 놀 수 있었던 나의 발에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잠기면서 할 일없이 서성이던 발 대신 바빠진 것은 손이었다. 밖에서 놀 때는 이동 거리를 포함하는 것들도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하루가 짧았다. 길을 가다 나비를 보고 가다 멈춰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모든 순간, 모든 발걸음으로 하루를 채웠다.


화살처럼 속히 가던 시간이 코로나라는 장벽에 막혀 더없이 느리게 흘러갔다. 촉감놀이, 만들기... 매일 새로운 재료를 꺼내 들어 놀이를 해도 남편이 오는 어두운 저녁은 더디 왔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티브이만 붙잡고 있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이때 시작한 것이 블로그였다.


코로나로 집 밖을 나갈 수 없을 때 남편은 매일같이 장난감을 선물했고, 택배를 뜯을 때마다 아이들은 신나 했다. 상자 개봉을 하고 두 시간 정도는 오로지 이것 하나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용해 보니 좋은 제품이 있다 싶어서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잠들어 있던 블로그의 문을 두드렸다.


쓰는 행위는 참으로 즐거운 것이었다. 그날의 분위기, 감정들을 한 곳에 응시해서 집중하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쏠려있던 관심을 돌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의 발 대신 손이 인터넷 세상 안으로 나를 들여놓았다. 공간의 변화가 있을 뿐 누군가를 만나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조여왔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내 블로그에 글을 쓰고 댓글로 소통을 하는 것을 넘어 나는 글쓰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적어내려 갔다. 부끄럽지만 꼭 하고 싶었고 남기고 싶었던 말들을 두서없이 써 내려갔다. 부모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 남편의 장점, 내 딸의 장점,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 등의 낮 간지러운 주제로 글을 썼다. 내 삶을 돌아보고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연애하는 감정처럼 심장을 간지럽히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순간은 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연인에게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순간이라 매일 놓치지 않고 쓰고 또 쓰게 되었다.


하지만 블로그에 쓰는 글은 어딘가 장난스럽게 느껴졌다. 진지하게 쓰면 안 될 것 같아 'ㅋㅋㅋㅋ'라는 말을 덧붙였다. 좀 더 진지한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에 블로그는 나에게 너무 개방된 장소였다. 남편이 알고 시부모님이 모두 알고 있는 이곳에 온전히 내 마음을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중 브런치를 알게 되고 두 번의 시도 끝에 합격하여 2년 동안 글을 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나만의 브런치데이를 가지고 글을 쓰는 일은 의무감이 8할을 차지한다. 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의무감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매일 쓰지는 못해도 매주 쓰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왜냐하면 글쓰기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누군가에게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고 누군가에게는 읽는 이로 하여금 교훈을 주기 위해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떠한 목적도 없었다. 그저 담담히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일 뿐. 재미있는 건 쓰다 보면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힌트를 얻는다. 복잡해서 풀리지 않는 숙제의 답을 긴 풀이 끝에 해결하는 기분이 든다.


지치고 힘든 순간을 써내려 갈 때 '힘들다'라는 말 만 반복해서 적지 않는다. 가장 먼저 어떠한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고 글로 쓴다. 쓰고 생각하고 퇴고를 하면서 잘못된 점은 무엇이고 잘한 것은 어떤 것인지 분명해진다. 결론에는 내 삶의 방향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다짐하는 것으로 마무리진다. 글로 새겨진 것이 눈을 통해 인지되어 뇌리에 박히면 행동에는 거침이 없어진다. 우물쭈물하던 마음과 달리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된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최근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완독 했다. 오랜만에 읽는 책이었는데 와닿는 문장이 참 많아서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서점에서 구매를 하게 됐다.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느낀 점을 쓰면서 내 마음에 남은 하나는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었다.


글 속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인물은 '민철'이었다. 잘하는 것도 없지만 좋아하는 것도 없다는 고등학생 민철. 나는 민철의 말에서 요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뾰족하게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이들과 비교할 만큼 좋아하는 열정도 없는 나. 사춘기를 겪고 있는 민철의 엄마가 내린 처방은 공부하는 대신 서점에 가는 것이었다. 서점 대표였던 영주는 그런 민철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도록 했다. 민철은 재미없다고 했지만 마지막에는 완독 한 뒤 대표에게 이야기한다.


"재미는 없었는데요. 이상하게 주인공이 저랑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다 다르거든요. 성격도 다르고, 하는 행동도 다 다른데. 그런데도 저랑 비슷한 것 같았어요. 세상에 심드렁한 거? 아무것에도 흥미 없는 거? 그래서 걔 보면서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싶어 조금 마음이 놓였어요."

어서 요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348page


어쩌면 나의 글 쓰는 목표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당신과 같은 힘듦, 우울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여기도 있어요. 하지만 극복하려고 해요.'


누군가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힘을 내라고 하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으니까. 세상에 힘든 사람은 나밖에 없어라는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이럴 때 가장 큰 위로는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누구나 이런 감정을 겪고 있구나. 뚜렷한 마음을 나누지 않아도 고통이 분담이 될 때 위안이 위로가 되어 찾아온다. 소설의 주인공이 보통사람을 대변한다는 황보름 작가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서 나를 느끼고 감정을 대입하면서 극적인 상황을 돌파할 힘을 얻기도 한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데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 쓰는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 느낀 나의 글쓰기 목적 때문이다. 가장 나를 위한 일을 하지만 나와 같은 감정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겼다.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제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중략)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274page


글을 잘 쓰지도 못하면서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도 봐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살림을 해도 모자를 시간에 타자를 치는 일을 하는 나를 보면서 돈도 안되고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왜 이러고 있지?라는 의문이 수시로 찾아온다. 복잡한 마음이 들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책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번에도 그 답을 얻게 되었다.


인생은 미묘하고 복잡해서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고 총제적이라는 말. 글쓰기를 통해서 행불행이 교차할 때가 있을 테지만 지금은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나는 모른다. 5분 뒤의 일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은 날갯짓이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누가 알겠는가. 황보름 작가가 전달했던 메시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재에 충실할 것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정성을 다 할 것이다. 글쓰기를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솔직하게 나만의 이야기를 적으므로써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끄적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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