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미뤘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by 해강

정밀 검사를 위한 2차 채혈을 하고,
양쪽 어깨에 예방접종까지 맞았다.


두꺼운 주사 바늘이
여러 번 몸에 쑤시듯

몸이 예민해져 있었다.

이제는 참고 맞지만,

사실 나는 주사를 맞는 게 너무 싫다.


청소 팀장 일은 그만뒀지만
사무실 계약을 앞두고 있던 나는
입주 전까지

작은 일당을 받더라도
청소 일을 계속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치 약을 받고

보험사에 제출해야 할 서류 묶음을 보니
과연 내가
몸을 혹사시키는 일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 일은 내게 처음으로
‘돈 백만 원은 거뜬히 만들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준 일이었다.


내가 어디에 나가도

하루 10만 원은 벌 수 있겠다는 감각.


월급이라는
한 달 주기의 느린 현금 흐름만 경험하던 삶에서
일당이라는
회전률이 빠른 일을 처음 해보고는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언제든 급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무실 이사도 해야 하고,

시즌 준비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으니
욕심부리지 말고
하루에 한 집만 도와주면서
내 일을 병행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검진 결과를 받고 난 뒤

이틀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우주가 나를 시험하는 걸까.
이래도 이 일이 하고 싶냐고
나에게 묻는 걸까.


몸이 이런데
매달 고정비가 나가는 사무실로
나가는 선택이
과연 내 몸을 위한 일일까.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너무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류마티스라는 병이
스트레스와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하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늘 스트레스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내가
또다시
매출과 월세와 부담감을 짊어진 상태로
나 자신을 밀어 넣는 게
맞는 선택일까,
그 질문을 계속하게 됐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2월 20일 입주 예정으로
1508호 계약한 사람입니다.


어디까지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병 진단을 받아
입주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하루 이틀 정도 더 고민한 뒤
결정해서 알려드려도 괜찮을까요?”


내가 이런 상황에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제 ChatGPT밖에 없고,


더 이상 내 주변에

지혜로운 어른은 없다.


그 사실이

지금 나를 가장 외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