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떠나보낸 지 5년 그리고 그 후
연초에 서점을 거닐다 한 권의 책에 눈이 사로잡혔다. 호프 에덜먼의 <슬픔 이후의 슬픔> 부제로 쓰여있던 제목이 더욱 나의 손을 이끌었다. "상실의 아픔과 함께 삶으로 나아가는 법", "어떤 슬픔은 삶을 구원한다."
나는 5년 전 아버지를 잃었다. 췌장암으로 1년 반 정도 암 투병하다가 급격하게 죽음에 가까워져 병원에서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남은 생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아빠의 말에 우리는 아빠를 집으로 모셨고, 그렇게 1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태어나서 그렇게 죽음을 가까이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신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임종을 지켜보고 그의 영혼이 다 빠져나가 온몸이 차갑게 굳기까지 누군가의 곁을 지켜본 경험은 정말 두 번 다시 하기 힘든 귀한 경험이었다. 상상했던 죽음은 매우 고통스럽고 징그럽거나 혐오스러울 것 같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실상은 전혀 반대였다. 애틋하고 안쓰러웠고, 그동안 고생했던 아빠가 드디어 편안해질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기뻤다.
"그동안 고생했어, 아빠 고마워 사랑해 잘 가"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아빠의 눈을 보며 내뱉은 말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그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경험한 아빠의 죽음은 순간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었고, 모든 과정이 끝이 났을 때 그는 완전한 죽음에 이르렀다.
아빠가 죽고 나서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방으로 들어가 검정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오빠에게도 검정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했고, 힘겨워하는 엄마를 대신해 119에 신고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경찰이 집에 방문한다. 그렇게 경찰 조사까지 받은 후, 우리는 아빠를 앰뷸런스에 싣고 장례를 치르러 갔다. 아직도 운전해주셨던 운전기사 아저씨를 잊지 못한다. 오빠랑 나는 맨 앞자리에 함께 탔는데, 너무 앳되고 어린 상주 둘을 보며 아저씨는 이런저런 조언을 귀띔해주었다.
"엄마 지금 제정신 아니니까, 둘이 이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살아야 해.
장례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절대 비싼 거 하지 말고 그냥 기본만 하면 된다.
비싼 거 추천해주는데 절대 그런 거 할 필요 없고, 제일 기본으로만 하면 된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떠한 슬픔과 불운이 닥쳐도 삶은 계속된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거나 비가 세차게 내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며, 세상은 무심하고 한결같이 그대로 흘러간다.
호프 에덜먼의 <슬픔 이후의 슬픔>은 나와 같은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큰 위로가 되었다. 나보다 더 오래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고 삶을 살아간 사람들, 그리고 그걸 연구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이겨내기 위해 개인적인 슬픔까지 연구하며 책으로 펴낸 저자까지.
그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그 시간 속에서 외롭고 혼란스러워하며 보냈던 시간이 명쾌해졌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 날들, 아빠의 소품과 흔적을 발견하면 장식장에 수집하게 된 나의 습관,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 몸에 타투를 받은 것, 운전을 좋아하는 아빠의 취미와 취향을 나의 취미와 취향으로 받아들이게 된 모든 것들이 이상 증세가 아니라 그냥 아빠의 죽음 이후의 나라는 것과 그 모든 게 나만의 애도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직 끝까지 다 못 읽었는데, 빨리 더 읽어봐야겠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난 이후의 삶은 어떨까, 이후의 애도는 어떤 방식일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