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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현 철학관 May 10. 2023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20대의 나의 거인의 어깨들에게

이번 한 주는 신기하게도 "스승"에 대한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그런 하루하루였다.


나에게는 인생의 스승이자 디자인을 알려주신 김장훈이라는 교수님이 있다. 그리고 교수님에게도 내가 교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교수님이 사랑하는 교수님들이 계신다. 아마 내가 알기론 두 분 다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디자이너들은 바로 토니 팔라디노(Tony Palladino) 그리고 밥 길(Bob Gill)이다.


개인적으로 토니 팔라디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포스터는 암흑했던 나의 20대 후반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 포스터는 (인생의) 터널을 그린 것인데, 포스터 아래에 있는 글귀를 보면, "It's not the light at the end of the tunnel, it's the light within." 터널 끝에 있는 빛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는 빛이 더 소중하다는 뭐 그런 뜻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지치고 힘든 날에도 이 포스터를 보며, 나중에 터널의 끝에서 돌아봤을 때 나의 시간도 이렇게 알록달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수님 방에 가면, Tony Palladino의 친필 사인이 있는 포스터가 엄청 크게 액자에 걸려있었다. 한동안 나는 이 포스터에 영감을 받아 카톡 배경화면으로 꽤 오랫동안 해놓은 것이 기억에 난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올해 처음으로 교수님께 과일을 선물했다.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한국은 나주 배가 참 맛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서, 나중에 꼭 나주 배를 선물해드리고 싶었는데 배 철이 아닌 거 같아서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던 반건시 선물세트를 보내드렸다. 명절 때 회사에서 거래처에 보낼 선물을 고를 때면 늘 먹어본 것들 중에서 가장 맛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로 고르는 우리 대표님의 안목을 믿고 바로 주문했다, 나의 편지와 함께.


"존경하는 김장훈 교수님께.."로 시작해서 핸드폰 화면 꽉 차게 편지 써서 카톡 드렸다. 20대 때 연락드릴 때는 맨날 죽는소리만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뭐 자랑할 만한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닌데 교수님 앞에 스스로 당당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다. 그때는 왠지 모르게 나를 되게 남들에게 인정받는,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압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오히려 디자인을 하지 않으니 마음이 더 편하다. 교수님도 아마 내가 디자이너로써의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았을까? 대학교 때부터 기획하는 걸 좋아했지, 사실 디자인 자체를 재미있어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나의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   


어쨌든 정말 감사하게도 10년 간의 긴 외사랑 끝에 단비 같은 장문의 답장이 왔다. "다현이, 미국은 잘 다녀왔는가?"로 시작해, 고기 사달라고 했더니 "고기 타도록 잔소리, 들려주마 ^^"로 끝나는 교수님만의 위트가 묻어나는 감동의 편지.

교수님은 1년 전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현업에 뛰어드셨다.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그 나이에 편하고 안전한 나만의 safety zone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교수님이 나는 너무 멋있다. 그리고 바로 어제 PT 발표에서 개박살 나고 왔다고 속상해하시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너무 오래 쉬셔서 많이 고생하고 계신 것 같아 안쓰럽고 더 마음이 짠하기도 하지만, 교수님 실력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뭘 해도 누구보다 잘하실 거 아니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응원의 마음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살짝, 아주 손톱만큼은 약간, "샘통이다" 싶은 그런 마음도 함께. 왜냐면 교수님 크리틱은 정말 쉽지가 않았거든.





최근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 생겼다. 올해 3월부터 옷 만드는 걸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분을 옷을 만드는 장인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뭔가 되게 나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 내가 보는 그 사람은 까칠하다. 날카롭고, 자기만의 기준이 명확하고, 인생의 선택들에 있어서 자기만의 고집, 철학, 기준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할까? 어떻게 보면 김장훈 교수님과도 조금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 그렇게 고집스러운 사람이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도 조금 물들어서 닮고 싶다는 생각도. 이 선생님은 에그타르트 같은 것보다는 호두과자 취향이라고 해서, 내일 수업 전에 압구정 연리희재에서 개성주악을 사가볼까 한다. 편지도 썼는데 과연 반응이 어떨지.





너무 갑작스럽게, 한 6년 만에 20대의 나의 멘토였던 최영환 대표님을 만났다. 대표님을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그분은 확실히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누가 아프리카에 가서 교육을 하겠다는 꿈을 꿀 수 있겠는가? 심지어 처음 만나고 10년이 넘토록 지금까지도 매년 아프리카에 가서 늘 해오던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게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10년 전 사용했던 상수동 사무실의 위치가, 인테리어가, 파란 대문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 뭔가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멋있는 흔적, 추억, legacy였다.


회사에서 ODA 사업 입찰을 준비하고 있는데, 문득 최영환 대표님과 혜원언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염치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고, 하루 만에 흔쾌히 도와주신다고 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반갑긴 하다. 내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교회랑 싸우며 열심히 지웠던 그때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덕분에 나도 가끔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꺼내볼 수 있으니까. 백발, 코 피어싱, 타투, 긴 시간 참 많이 변한 나를 보며 대표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내 타투는 마음에 드셨던 듯)


그날 저녁 핸드폰을 아스팔트에 떨어뜨리며 우연찮게 예전에 쓰던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게 되었다.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예전에 녹음해 놨던 녹음파일이나 들어볼까 하고 봤더니, 케케묵은 나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겉모습은 많이 달라 보일 수 있으나 나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때 그 친구가 하고 있던 생각들, 꾸고 있던 꿈들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그때는 막연했다면 지금은 더 구체적 이어졌다고 해야 될까?


서비스센터를 오고 가며 또 혼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이장님 댁 근처에서 대나무 숲의 이파리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큰 나무 아래 있는 벤치에 누워서 바람소리를 들었던 기억까지. 그 녹음 파일이, 그게 다 그대로 있었고, 나는 피부로 기억하며 또 시간여행을 했다. 그리고 또 무언가를 깨닫고, 그 때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다.

세상에 헛된 시간은 없다. 그저 내가 이해하지 못할 뿐. 

마음에 심은 씨앗은 싹이 트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를 처음 만났던 2013년, 그 후로 딱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참 길었던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2015년 어느날, Mtree 멤버들 회식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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