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오빠(오랜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그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6년 만에 나의 아버지가 장례를 치렀던 그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너무도 추운 겨울의 어느 날이었는데, 오빠의 아버지는 아주 더운 날 가시는구나. 익숙한 곳이어서 그런지 주차도 수월했다.
점심을 안 먹고 가서 식사를 거하게 했다. 오빠가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잘 먹는 사람 처음 본다며, 나는 반찬까지 골고루 먹으며 오빠에게 장례식장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냐며 으스댔다. 오빠는 내게 그동안 어떻게 감당했냐며, 이겨내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데 나는 솔직히 답 못해줬다. 그냥 안고 사는 거지 나아지는 게 어딨겠냐며, 이게 병도 아닌데 완치가 되겠냐며 말해주고 싶었다가 말았다. 지금도 충분히 벅찰 건데 미래의 슬픔까지 얹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한 시간 수다 떨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늘 산 사람은 잘 못한 것들, 아쉬운 것들만 생각하고 슬퍼하니까 스스로 너무 벌주지 말라고 당부해 줬다. 그 아쉬운 마음까지 다 아실 거라고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 다행히 오빠네 집에 새 생명이 태어났다. 생명이 죽음의 슬픔을 그래도 좀 덮긴 해서 다행이다 싶다. 아이가 집안의 기쁨을 되찾아주리라.
너무 꼰대 같아서 오빠에겐 말해주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생각하니 죽음은, 불행은 아니다. "왜 하필 내게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하고 분노할 일은 더더욱 아니고, 모든 이가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와서 아무것도 없이 간다. 그 과정의 끝이 죽음일 뿐이다. 우리는 그래서 조금은 더 죽음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죽음을 알면 더 잘 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