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현 철학관 May 10. 2023

기억 속 아빠를 찾아서

그 시작점과 마주하는 일

긴 시간 동안 마음에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아빠와 나에 대한 글쓰기. 이걸 내가 그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는진 몰랐는데, 우연히 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에서 2016년 녹음파일을 듣다가, 그때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늘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조금씩이라도 더듬어가며 써보려고 한다.


이 아이디어의 시작이 언제였냐면, 내가 불가리아에 있을 2016년쯤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한 1년.. 6개월 전쯤 되었을 것이다. 아빠가 수술을 하러 들어가며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가 말하지 말라고 그래서 외국에 있는 너한테는 말 못 했어.

얼마 전 아빠가 암 진단을 받았는데, 지금 수술하러 들어갔어.

초기라 너무 걱정할 건 없고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이제 그만 한국 들어오는 게 좋을 것 같아.


샤워를 하면서 처음엔 기도를 했다. 내가 대신 아프면 안 되겠냐고, 서로의 짐을 좀 나눠지면 안 되겠냐고, 하나님께 빌었다. 근데 너무도 잔인하게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응답을 받는다. 그날 샤워하면서 냉정하고도 공평한 인생에 대해 배우며 엄청 울었다. 내가 이렇게 속상한데, 비바람이나 강풍 하나 몰아치지 않고 너무 쨍쨍한 날씨와 평화로운 일상에 더 야속해 화가 났던 게 기억이 난다. 나의 작디 작음을 깨달으며,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관점이 바뀌듯, 우주먼지 같은 나 자신을 바라보며 이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집 계약한 지 거의 한 달도 안돼서 집도 다 정리하고 물건도 팔았는지 다 나눠주었는지 그렇게 그냥 계획했던 일을 다 접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다행히 아빠는 수술이 잘 끝났다. 그리고 다시는 너를 못 보는 줄 알았다며 내 손을 잡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우리의 관계는 지옥이었다. 지금은 둘 다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해서 그랬던 것을 이해하지만, 그땐 툭하면 "그러다가 아빠 죽으면 너 어떡하려고 그래!"라며 죽음으로 협박하는 아빠와 그게 너무 싫었던 나와의 전쟁 같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다 너무 후회되긴 한다. 근데 그때는 아빠가 그렇게 일찍 죽을지 몰랐으니까, 길면 10년이겠구나 했다. 10년은 무슨 10년, 5년만 더 살아줬어도 너무 고마웠겠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의 타임리밋 알람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 체 우리는 매일같이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너무 눈물이 많이 나서 더 이상 못 쓰겠다. 다른 날 더 이어서 써봐야지.

아빠 이야기 하니까 또 보고 싶다.


요즘 물리학,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읽으며 공부하고 있는데,  가능태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수한 가능성이, 엔트로피가 존재한다면, 다른 가능성 속에서는 그가 살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와 내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진 않을까? 모든 시간 흐르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면 과거의 모든 시간과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의 그의 물리적 모습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그 존재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뭐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