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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Nov 01. 2020

[너와 같은 실버타운에 입주할 줄 알았어]

남친이 없는(안 생기는) 여자들의 착각 


조금은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네. 

아직도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 글을 네가 천국에서 읽어야 한단 사실이 참 인정하기가 싫어져. 

(또 자동 반사로 눈물이 또르륵)     


대학시절 유난히 말이 없고 수업 때마다 맨 뒷자리에 앉는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왜 그렇게 말이 걸고 싶었던 걸까?     


내가 그렇게 적극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도 그랬겠지만 살면서 마주치는, 간간히 왠지 모르게 끌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네가 정말 꼭 그런 사람이었어.     


조용했던 네게 숨겨져 있던 비밀들은 들을수록 아파지더라. 

살면서 얻게 됐다는 갖가지 상처들... 

너무나 가부장적이던 부모님의 엄한 관리 속에서 말수가 없어지고 모자를 즐겨 쓰게 됐다던 너. 

그 이야기들이 나의 가슴을 쿡쿡 누르며 다른 듯 닮은 공감을 부르더라. 

모두 털어놓을 수 없지만 나 역시 힘든 사연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너 그거 기억해? 

네이트온으로 종종 야한 19금 영화를 나한테 추천했던 것.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한 기억의 전환) 

여자들도 물론 응큼하게 섹시한 미디어 매체들을 찾지만 

진짜 네 취향이 그럴 줄은 몰랐다! 

    

엉뚱하고 발랄함 가득한 너의 본성을 알아차린 뒤로, 

나는 너의 매력에 더욱 풍덩할 수밖에 없었지. 

사회생활을 하게 된 때에도 간간히 너와 만나는 가끔의 달달함이 꿀단지 하나쯤은 됐던 것 같은데.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너의 유방암 진단과 퇴사, 

그리고 이어진 항암치료...


폭탄머리 같이 부스스한 파마 스타일의 가발을 쓰고 나와서는 

"개성 있지 않아?"하고 웃는 널 보면서 나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곤 했었지.      


그래도 수술이 잘 됐다고 해서, 주기적으로 잘 관리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한해 두 해가 지나 너의 머리카락도 다시 물미역처럼 찰랑이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쯤 

너는 나의 카톡을 씹기 시작하더라.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면서 ‘아닐 거야’ ‘아닐 거야’      

.

.

.

한 달 뒤, 너의 카톡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이 전해지고... 

(심은지 얼마 안 된 나무에 걸려있던 웃는 네얼굴)


나는 몇 달 내내 ‘멍하다 울다가’를 반복했어. 

너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나무 한그루에 걸린 너의 사진. 

그리고 좋은 곳으로 갔다는 이야기...


경황이 없어 주변 친구들한테 알리지 못했다곤 하셨지만, 

하늘나라고 간지 1달이나 지나서 들은 너의 소식에 진심으로 영혼을 놓을 수밖에 없었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서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 네가 있는 곳.


어쩜 이럴 수가 있어? 

우리 나중에 같은 실버타운 입주하기로 했었잖아!




(c)2020. GO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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