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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Nov 01. 2020

[계속 하이힐을 신을 줄 알았어]

스무 살, 한창 튼튼한 여성의 착각


신발장 천덕꾸러기 1번? 

11cm 킬힐! 


보기에는 정말 멋지지만 신었을 땐 참 아슬아슬하지. 

실제로 커리어 현장에서 신은 적이 있었는데, 

부들부들 코어에 어찌나 힘이 들어가던지.  


이 구두를 버리기가 싫은 건 패션쇼 무대 위 MC로서 함께해 준 구두였기 때문이야. 

내 일터에서 매무새를 치명적으로 빛내준 구두. 

하지만 신고 걷기가 치명적으로 힘든 신발.      


고등학교 시절에 나와 친구는 하이힐을 몰래몰래 신고 다니며 어른 흉내를 내곤 했었지. 

예전엔 드라마에서 종종 시골 처자가 난생처음 하이힐을 신고 발목을 삐끗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었잖아. 

그만큼 하이힐은 성인 여성의 상징이자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아이템이었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했던 패션 아이템도 바로 하이힐.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그게 로망이었던 걸 어쩌겠어. 


그 이후로? 하이힐의 맛에 그만 중독이 돼버린 거 있지. 

신발 굽이 6cm 이상이 되지 않으면 내가 난쟁이가 되는 느낌마저 들었지 뭐야!     

그 이야길 하니까 마침 공감하는 친구가 있더라고. 

힐을 신지 않은 날은 숏다리가 되는 느낌이 든다며...

깔깔 웃으며 성치 않은 서로의 뒤꿈치에 대해서도 안쓰러움을 표했지. 

(지갑 속에 필수로 넣어 다니던 대일밴드 두 개)     


하루 종일 캠퍼스와 일대를 누비고 기숙사 내 방에 들어오면,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다리가 욱신거렸어. 

다음날에도 부은 발을 다시 구겨 넣은 채 다시 신고 나가던 

뾰족한 검정 하이힐이 생각나. (불쌍한 내 발가락)     


요즘의 나? 

결혼식이나 행사, 그리고 강의를 나갈 때 하이힐을 가방에 싸들고 나타나지!


어느 날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드라마를 보는데 

극 중 손예진도 운동화를 신고 하이힐을 가방에 싸서 가는 장면이 나오더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란 공감과 여자들의 현명함에 현웃을 터트렸어. 

       

하이힐이 더 이상 예전의 하이힐이 아닌 요즘. 

치마를 입은 날도 어글리 운동화에 사각 코 단화를 신으며 더 이상 내 다리 길이에 집착하지 않아. 


요즘은 청바지 밑단도 쿨~하게 뜯은 듯이 잘려서 나오는 게 아니겠어? 

더 이상 수선비를 아끼려는 듯 기장이 긴 바지에 하이힐을 신지 않아.  


아찔하거나 요조숙녀인 모습보다는 ‘꾸안꾸 스타일’의 스웨그 넘치는 #OOTD를 동경하게 되었어. 

한결 자유분방해진 나의 발걸음과 상처와 물집과 붓기가 없는 건강한 나의 두 발과 

촌스러움이 걷힌 요즘 나의 #데일리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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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에서 하이힐을 벗겨 준 패션 유튜버님들께 경의를 표하며...





(c)2020. GO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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