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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May 08. 2020

마음의 눈을 떴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스피치를 코칭하는 나의 '시작'이야기    

"선생님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정말 고~운 선생님입니다!"



마지막 수업 차시의 스피치 발표.

제게 버릴 것이 없단 시각장애인 교육생의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어느 날 밤...

저는 버려야 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스스로 콤플렉스 극복,  

많은 것들의 '버림'을 바탕으로 교육 강사가 된 저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한마디.

'버릴 것이 없는 선생님'


'과연 내가 그런 선생님일까?'

저는 앞으로도 버려야 할 것들이 태산인데,

그 한마디가 너무 민망하고 또 따뜻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그토록 버려야만 했던 것일까요?


10대 학창 시절 왕따의 아픈 경험이 있는 저에게  

'대인 공포증'과 '적은 말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발목을 잡는, 그야말로 지독한 악의 축이 되어주었죠.


대학 1, 2학년 때는 아웃사이더를 자청하게도 만들었고,

심지어 수업 조 발표 때 갑자기 공포가 극심해져 선배에게 발표를 대신 부탁할 만큼 내심 큰 문제가 되어버린 겁니다.


 

인생의 어두웠던 시간들... 그것은 곧 나의 배움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 나는 스스로가 정말로 버리고 싶었습니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지 않으면 외출 조차 힘겨운 일상이었던...

나를 미워하기 시작하자 바깥세상도 온통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던...


일부러 두 눈을 가리고만 싶었던 때.

정말로 지독한 안개가 낀 느낌으로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생겼던 것일까,

아니라면 한계를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용기 내어 도전한 일이 바로 대학 내 방송국 DJ였답니다.


사실 초등학교 때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자신감 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요?


스물둘, 스스로의 극복을 위한 도전의 시작이

지금 직업으로의 나비효과가 될 것이란 사실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 도전 하나가 없었더라면...'

'버릴 것이 하나 없다며 나를 아껴주시는 이분들과  만나 뵐 기회가 과연 있었을까?'


아팠던 과거에  맞서며 좀 더 성숙한 나로 다가설 수가 있었음을 깨닫는 요즘.


나는 더 이상 아프지가 않습니다.



"나는 립스틱 하나 고를 때도 엄~청 고민해요!"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과의 첫 수업은

너무 특별하지도,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았던

생각보다 평범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피치 교육 과정을 기획하게 된 어느 사회복지사께서

우연히 제게 강의를 제의해주셨고,

그것은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자

곧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의 시작이었지요.


1교시가 시작되었습니다.

분명 수업의 정원은 한자리 숫자인 것으로 아는데,

앉아있는 분들의 숫자는 10명이 넘는 게 아니겠어요?


알고 봤더니 시각장애인 분들의 이동을 돕는 보조인 분들이 스피치 수업 때도 함께 참여해주신 것.


도우미로서 함께 앉아계시다가 오히려 수업에 빠져드신 어느 보조인께서는

"스피치 강의가 이렇게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거였네요! 계속 함께 들어야겠어요~!"

하시며 제 심장에 훈훈한 힘을 실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작지만 커다란 시작이 일어나는 곳, 우리만의 특별한 스피치 클래스!



회차가 거듭될수록 우리 마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교육생 분들과 자주 간식과 사담을 나누며

제가 오히려 많은 것들을 배워가기도 했답니다.

 

여성 교육생 한분은 마치 중요한 일에 참석하듯, 

매주 화장을 곱게 하고 정장 차림으로 수업을  오시는 모습이 정말로 멋졌습니다.


알고봤더니 장애인식개선 전문 강사가 되기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신 분이었지요,


"립스틱 색도 오늘 귀걸이도 너무 예쁘세요. 혹시 직접 고르시는 건가요?"

그분의 패션 감각이 보통이 아니시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아유~ 저는 직접 옷 고르고 화장하느라 시간이 엄~~ 청 걸려요!"

"립스틱 색깔 하나도 쉽게 고르지 않아요!"

"나를 가꾸는 건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니까..."


딱 봐도 대충 온 나의 차림새보다

눈을 감고 한참을 신중하게 고른 그녀의 차림새가

훨씬 아름다웠다는 사실!


더욱 놀라웠던 건 쇼핑을 할 때 디자인과 소재를 촉각으로 느끼고,

컬러감은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과의 비교를 부탁해서 고르신단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나서부터 저도

수업 때만큼은 더욱 옷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더욱 아끼고 가꾸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말이에요.


"여러분, 들리시나요? 저의 블링블링함이... "

"저 오늘 린넨 100% 재킷 입었어요. 함 만져보세요!"

(ㅎㅎ)



"키득키득키득"




문화 행사 MC를 보며 인연이 된 시각장애인 가수 지호 씨는

종종 카톡 메시지로 먼저 안부를 물어오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그리고 지쳐있는 제게 힘내라는 한마디를 건넵니다.


무대 뒤 대기실에서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날,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지호 씨에게 스스럼없이 물었습니다.

앞으로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종종 안부 나눌 수 있겠느냐고 말이죠.


이미 유명세를 탄 스타이기도 지만,

제가 배우고 싶은 에티튜드가 많은 친구였으니까요.



내가 단숨에 찐 팬이 되어버린 가수 김지호 님 :)



무대 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멋진 매너,

일상에서의 매력적인 태도...

제게 너무나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한 지호님의 밝음.

그리고 대화 중간중간 그의 시그니처 멘트


"키득키득키득"


그만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읽으며

오늘도 따라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요즘 나의 '시작'을 이야기했습니다.



지호 씨의 박카스 같은 한마디 '키득키득키득'



여태껏 쌓아 온 시각장애인 스피치 클래스 경험들을 바탕으로 특화된 스피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지호 씨가 가끔 조언을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오브 콜스!"


물론, 소속사와 매니저에게 스케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연예인 친구이므로 자주 도움을 받긴 어렵겠지만

따뜻한 친구의 격려가 나의 시작에 힘을 실어줍니다.


지호 씨에게 광대 승천한 내 얼굴을 들려줍니다.


"키득키득키득"

:)



시각장애인 수업에 쓰이는 점자 교재.  손으로 만지는 고운쌤의 스피치 교안!



"마음의 눈을 떴습니다"


거친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마음속에

다시금 여린 새싹이 고개를 내민 건

스스로 도전을 시작한 용기 덕분이었습니다.


항상 극복 일로에 서있던 제게는

그 모습 자체를 응원해주던 분들이 계셨기에

매일 아침 힘차게 눈을 뜰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눈을 뜨고서

내가 아닌 타인, 그리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부끄럽지만 최근에서야 자주 가능해진 일.

'내가 아닌 타인을 생각하고 돕는 일'


이왕이면

매일 하는 일을 바탕으로 그 일을 고 싶습니다.


또한, 이런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에 시동을 걸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제 마음의 시작...

앞으로 계속 응원해주실 거죠?


고운쌤의 네버네~버엔딩 스토리

앞으로도 쭉~들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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