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가 되는 학부모 생활
안녕하세요. 맘즈 하이브 #MumzHive 주인장 김현주입니다.
두바이에서 아이도 낳고 학교도 보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학부모 위원회에 참여했을까?
내가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었을까?”
아니요.
아랍에미레이트라는 다국적 다인종 환경에 내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 거 같아요. 같은 반 10명 남짓한 아이들은 인종도 다르고 국적도 달랐습니다. 미국, 호주, 인도, 레바논, 프랑스, 세르비아, 독일, 영국 등등 전부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지 늘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반은 네이티브(Native: 영어가 모어인 원어민을 네이티브라 부르지요) 였어요. 그리고 또 반은 바이링구얼이었지요. 아랍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등 어쩌면 이게 당연한 추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아이도 뒤쳐지면 안 되겠다..
첫날 이후 한 2주일은 꽤나 힘들었어요. 이틀 정도는 문제없이 학교를 가고 또 도시락도 잘 먹으면서 왔다 갔다 했어요. 그다음 셋째 날부터 문제였지요... 아침에 데려다 줄 때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울먹이지 않고 교실에 들어갈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어요. 담임 선생님은 문 앞에서 아이와 인사도 나누고 오늘은 어떤지 물어봐 주시면서 아이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요. 하지만 아이는 듣는 둥 마는 중 엄마만 계속 붙잡고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문제였던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 같은 느낌이었지요...
네 맞아요. 제 아이는 집에서 한국어만 말하고 영어는 거의 몰랐어요. 동화책을 한두 달 전부터 읽어주긴 했지만 머 그 의미를 알리는 없었지요. 그래서 수업 시작 전에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과 수업 전에 짧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이의 특성에 대해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어요.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고 있다. 영어는 노출이 거의 안 된 상태라서 처음에 적응이 어려울 거 같다. 혹시라도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알려달라고요, 선생님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문제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일단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요.
등교 첫 주는 약간 혼란스러웠어요. 어느 날은 학교 교실에 잘 들어가고 어느 날은 마구 울고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반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잘 노는 친구들은 두세명 정도였어요. 그 말은 다른 대부분의 아이들은 문 앞에서 부모와 실랑이를 벌였지요. 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문 앞에서 어르고 달래서 겨우 아이를 교실에 떼어놓고 오는데 맘이 안 좋았어요. 만 세 살이라는 나이에 이렇게 떨어져서 수업을 받는 게 맞는 일인지 아닌지부터 시작했어요.
벌써 입학도 시키고 적응을 하는 중간에도 이 생각은 계속됩니다.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라도 준다면 내년부터 다시 다니면 되니까요... 내 문제라면 이렇게까지 많은 옵션 그리고 온종일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 문제라서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혹시나 생길 문제까지 걱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몇몇 아이들은 잘 노는 거 같은데?
어떤 아이는 학교에 잘 적응하는 거 같은데?”
그 아이의 행동이 다르다면 엄아의 양육 방식이 다를 거라는 생각이 이르러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유난히 똘똘한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행동과 얼굴 표정에서 묻어나는 나는 학생이다라고 알려주는 그 아이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 아이의 엄마를 유심히 관찰했지요. 그 엄마랑 친해지고 싶었어요. 왜냐면 나도 그 방법을 배우면 왠지 내 아이가 좀 더 쉽게 학교 생활을 할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데려다주고 오후에는 먼저 아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엄마들하고 마주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래서 두 살 만에 얼리 픽업을 그만뒀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오후 3시까지 아이를 학교에 두었지요. 점심 이후 시간은 아라빅 클래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끼리 같이 노는데 추첨이 맞춰있었거든요.
마침에 그 엄마를 만났어요. (참, 그 엄마는 인디언 아메리칸이에요. 인도에서 대학교까지 나오고 미국에서 석사를 한 경우인데, 남편이 미국인 그리고 인도말을 쓴 적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인도말 과외 중입니다. ) 가볍게 인사하고 스몰 토크를 이어나갔어요. 스몰 토크만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말해요. 공통의 관심사를 알기 전에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을 갖는 거지요.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단 둘이 타는 도중에 그 몇 초 동안 어색하잖아요. 이 나라에 살면서 이제 저는 스몰토크의 달인이 되었어요. 아이랑 같이 탄 부모를 부면 아이에게 먼저 눈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어요. 대략적인 나이를 물어가며 널서리는 다니고 있는지, 스쿠터는 타기 시작했는지 묻는 식으로요. 이런 스몰 토크는 정말로 중요하답니다. ^^
그 엄마의 첫인상은 좋지는 않았어요.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머에 쫓기듯 아이를 데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물로 이름이며 간단한 인사는 주고받았지만 그뿐이었어요. 그날은 그렇게 보내고 다음 기회를 다시 기다렸지요. 아침에 만날 땐느 아이랑 교실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느라 그 엄마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후 아이를 데려오는 그 시간에 매우 일찍 갔어요. 제일 먼저 교실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어요. 그 교실 앞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들끼리 대화를 하기 시작한 거지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상태에서 이름을 들어도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우선 대화는 당연히 전부 영어로 진행합니다. 네이티브 반 바이링구얼(이중언어 사용자, 예를 들어 영어 브라질어를 함께 쓰는데 일생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사람) 반이라서 오히려 부담이 덜했습니다. 엄마들과 대화를 하면서 저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바이링구얼 수준이 되기까지 쉽지 않겠다는 거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엄마이기 때문에 서로 깊이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탓에 아이를 낳고 기르기 전까지는 해외 살면서도 한국인 커뮤니티를 별로 찾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곳 문화에 적응하려 커피 모닝에 나가서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는 게 일이었지요. 그때 그 시간이 그렇게 헛되지 않았다는 걸 학교에서 다른 엄마들과 수다 떨면서 경험합니다. 이전에 친하게 진했던, 이란, 브라질, 스페인, 싱가포르, 영국 친구들과 지냈던 소소했지만 버거웠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스몰토크를 몇 번 하게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게 마련이에요. 예를 들면
“아이가 학교 좋아하디?
여기 어떤 거 같아.
선생님한테 어떤 식으로 의견을 말해야 할까? “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이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저는 학부모 위원회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왜냐면 그 방법이 나와 내 아이가 이 학교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