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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을 위한 응원 기록장 D+50

호치민에서 살기 시작 D+50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퍼런 새벽길을 보았다
손발이 시리고
칼 날 같은 겨울바람이
팽팽해진 볼살을 긁고 지나갔다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길고도 짧았던 한국생활이 끝났다

"진짜 혼자서 내가 호치민을 가네?"

이모와 이모부의 도움을 받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짐을 부치고, 티켓을 받고
이제 몸만 들어가면
정들었던 한국 땅에서 멀어진다

혼자서 간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모든 음식이 거부당했다

따뜻한 밥 한 끼 못 먹이고 보내서 미안하고
아쉽다는 이모와 이모부의 마음을
괜찮다 예의 바른 인사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늦은 새벽 2시 호치민 공항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3시를 훌쩍 넘겼다

너무 피곤해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잊고 잠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

눈을 뜨니 자신이 호치민 어느 숙소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한 끼도 못 먹었던 어제와는 달리

허기진 배의 신호가 느껴졌다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한테는

점심을 먹고 다시 연락하겠다며

안심시켰다



엄마는 미리 연락해 두었던

부동산 담당자를 만나라며 주소를 찍어주었다

(베트남은 모든 비즈니스 통로를 페이스북으로 하는 편이다

원룸을 찾고 싶을 땐 살고 싶은 군에 들어가서  원룸을 검색하면 매물을 내놓은 그룹방들이 여러 개가 나온다)




한적한 로컬 동네 골목집 앞에서

담당자를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질 않았다


엄마는 또 다른 숙소가 있다며 담당자의 연락처와 주소를 주었다


다시 그랩을 잡고 새로운 주소지로 이동했다


그랩 오토바이에 앉은 나의 등 뒤로

후끈한 열기와  바람 한점 없는 공기까지 함께 탄 기분이다


흥건하게 젖은 등과 삼킬 침 조차 없이 타는 갈증은

하노이와는 차원이 다르 느껴진 더위였다



두 번째 숙소는 친절하고 수월하게 집을 볼 수 있었다


숙소 앞 작은 공원

걸어서 갈 만한 위치에 있는 롯데마트

그랩 10분 거리의 학교

조용한 주택가


많은 점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이

처음 숙소 담당자가 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숙소처럼 보이는 집들이 보이지 않았던 점들과

집 주변 인프라가 없어 불편하겠다게 금방 파악됐다

낯 선 동네는 내 마음을 스산하게 했다


이곳의 장점들이 그곳으로 가면  

단점들로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푹푹찌는 뜨거운 더위때문에

지친 몸과 발걸움은

그곳을 가려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이 숙소가 좋다고 했다

엄마도 구글 지도로 이 숙소의 사진과

위치를 보았다며 나의 결정을 따라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 계약서 란에 서명을 해 보았다

엄마는 계약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 보고

싸인을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계약서 서명란에

작고 나약하게 나의 이름 석 자를 썼다

보증금 1개월 + 1개월 월세비를 하노이에서

엄마가 무통장 입금을 바로 하고 난 후

모든 계약이 완료됐다


나의 원룸 월 세 비용은

5,700,000만 동(한화 285,000원 정도)

수도료와 전기 요금은 별도이다

보통 500,000만 동(25,000원 정도)

생각보다 숙소를 빨리 계약을 해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너무 흥분되었다


3시간 동안 하노이에서 톡과 잘로로

나와 직원을 오고 가며

집 계약을 도와준 엄마가 대단했다


호텔로 돌아와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풀었다


"이안 고생했어...

더운데 집 보러 다니고 계약도 어찌어찌 잘 했네 ㅎㅎ?"


내가 너무 가혹한 건 아녔을까?

적어도 집을 구하고 계약을 하는 과정만큼은

내가 나서야 하지 않았을까?


혼자서 해 보겠다는 아이의 선택들 중

적절히 상황 봐 가면서 내가 해 줄 걸 그랬나?


그렇다고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 주변을 졸졸졸 따라다닐 순 없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해서

혼자서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해 보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나의 정보와 준비로

이루어진 반쪽짜리 경험이었지만

눈으로 보고 발로 직접 가는 경험만으로도

처음치곤 잘 해낸 모습이다


우리나라에 원룸 빌딩이 있다면

호치민에서는 서비스 아파트 빌딩이 있다


관리비 외에 추가요금을 내면

조식과 청소, 빨래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서비스 아파트의 이용시설과

출입 시 주의사항을 듣고

1년 계약을 잘 마무리했다


이마에 고여있던 두려움의 땀들이

식으면서 뽀송한 호흡이 돌아와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휴... 나도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혼자서 살아가기 위한 레벨 10이 있다면

이제 겨우 3단계쯤 온 것 같다며

뭐가 이렇게 할 일이 많냐며 투덜거리는 여유까지 보였다


마트에 가서 필요한 생활용품을

장바구니에 마구마구 담은 사진을 보내 주었다


국자는 손잡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목이 긴 것과 짧은 것 중 어떤 것이 좋은지...


냄비는 디자인이 예쁜 것과

실용적인 것 중 무엇이 좋은지...


이건 세제인지? 섬유 유연제 인지?

무엇으로 구분하는지...


세탁할 땐 세탁망이 꼭 필요한지...


자신의 주관과 취향대로

구입하고 사용하면 되는 문제로 보였다

어쩔 땐

뭐 이런 걸 다 물어보는 걸까? 하며

귀찮았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차려주는 밥만 먹던 아이가

국자를 자세히 보며 지낼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생활주변과 근접거리에만

집중하고 관심 있게 지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의외의 질문들 중

나의 20년 살림 노하우가 꽤 쓸모가 있기도 했다


생활용품 코너에서는

부엌, 화장실, 세탁실, 잠자리 용품

그 외 생활용품들을

골고루 샀다며 든든해 했다


살림의 세계로 입문하는 아이에게

살림이란 죽는 날까지 해야하는

고되고 힘든일지만

피할 순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자칫 조금만 게을러지면

살아가는 의미 테두리에서

 무기력 최전선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공간을 나름 꾸몄다며

페이스 톡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었다


계절이 하나뿐인 호치민이라서

옷장 속 옷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마트에서 사온 살림들도

각각 제 역활로 흩어져 있었다



"엄마, 이곳에 바구니를 놓고 수납했고요

냉장고와 옷 장 문에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사진들로 꾸몄지요"



함께 지낼 살림들과

숨 쉬고 먹고 자며

여유가 들어간 마음의 공간이 되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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