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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고 글쓰는 돌멩이
Apr 02. 2024
나의 아들을 위한 응원 기록장 D+20
어깨와 가슴을 펴는 연습이 필요하다
7년 전 큰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 설고 새로운 하노이 생활은
호기심과 재미는 한 달을 못 넘겼고
불만과 짜증은 잦아졌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모여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적 체험에 비해
다소 부족한 하노이는
주말이 와도 큰 아이가 갈만한 곳은 부족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하노이에 거주하는 대다수 한인 가족들은
방학이 되면
베트남 국내 휴양지를 가거나
한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역주행 여행을 즐기곤 한다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는
대학을 향한 질주로
학업 성적관리에 예민한 모습도 보였다
사는 곳은 하노이지만
살아가는 모습과 방법은
한국에서 지내는
여느 수험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활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잿빛 커튼은 한 줄기의 햇빛도 방안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키지 않는 방안의 전등은 장식품처럼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살짝 열린 문으로 보인 큰 아이의 방은
멀리서 보아도 침침해 보였다
고요하고 아늑한 외딴섬 동굴이라고 소개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미래에 머물 곳은 이곳(하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도 아닌 것 같단 말을 자주 했다
한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볼 때면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사실화되고
진실과 사실이 왜곡되는 등
무력과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아찔하다며
가능한 안 보며 지내야겠다고 했다
분명 내 나라 내 조국의 일인 건 알겠으나
희미한 애국심을 끄려 올려
생각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렇다고
때가 되면 자신이 살아야 할
나의 나라의 일인데
아무 생각 없는 사람으로 있자니 이래도 되는 것인가?
철없는 자신을 한심스럽게 판단하면서도
뚜렷한 동기부여가 없인 공부를 할 수 없겠다며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 지로 집중하고
하고 싶어 했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정해져야
뭐든 할 수 있겠으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고3이 문턱까지 왔고
대학이 코앞까지 왔다
사람으로 태어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성찰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나는 누구인가?
그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찾았다 싶을 때면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가도
의욕 상실이 들러붙을 때면
많은 시간을 잠으로 채웠고
밥은 적게 먹었다
끼니를 걸러 건강이 나빠질까 염려되
밥만큼은 질 수 없수 없어
나는 아이와 썰전을 풀었다
이야기의 물꼬가 터질 때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불만과 조언을 섞어가며
나의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엄마... 나 졸업하면 한국으로 가서 살아야 해?"
가녀리게 그려 본
미래에 만날 자신의 모습과
불안들을 어떻게 만날 것이며
어떤 시간으로 살아갈지
정리되었다며 편안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철저히 혼자서 살아봐야 하는 극한상황이 필요하다며
그 이유에 대한 설명도 솔직하게 이어갔다
한국의 치열한 경쟁구도 안에서
누구를 이겨야만 하는 생활에서 자신이 없다
예민한 감정들에 휘말려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진 어깨가 그려진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나의 성향과 기질을 민낯으로 만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건지고 싶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어깨와 가슴을 펴는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부모를 만난 풍요로운 그늘은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내가 나를 이끌고 살아가는 힘이
학력과 돈으로 유지되기 전에
나의 또렷한 정신과 건강한 몸이 우선이다
"엄마 나 군대도 다녀와야겠어"
20년 전 뱃속의 한 아기가
세상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태어났다
20년 후 성인이 된 그 아이가
세상을 향해 또 한 번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충청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갈 예정이라며
고속버스와 기차 예약을 마치고는
역쉬 아이티 국가 답다며 한마디 한다
"엄마 근데.... 한국 너무 좋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