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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27. 2024

제철


상큼한 딸기를 한껏 베어문다. 머지않아 은근한 달큼함 풍기는 참외의 샛노란 색으로 세상이 덮이고, 이내 향긋한 복숭아 내음. 아사삭한 소리가 연신 날아드는 날들 사이로 어느새 시원한 수박 과즙이 배어든다. 입가에 흥건한 달콤함.


외할아버지는 복숭아 과수원을 하셨다. 살구나무도 조금. 희미한 기억 속에서 뙤약볕과, 주먹 두 개를 붙인 것보다 더 알이 굵은 복숭아와, 한 입 베어 물면 주욱- 이 사이로 스미다 곧 가슴팍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과즙처럼 멈출 새 없던 가족들의 분주함만이 잊히지 않는다. 6월은 복숭아가 제철. 눈앞으로 온통 제철을 맞은 진한 분홍빛이 번질 때가 우리 가족이 모이는 철. 여전히 복숭아는 6월이 제철. 어느새 우리의 복숭아 철은 변했다. 그중 두 사람은 영원히 만날 수 없으므로. 우리만의 제철도, 우리의 사람들도, 우리의 만남도 영원 속에는 없으므로.


건강하려면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해.


철마다 시절에 알맞은 음식이 갖가지다. 이 얼마나 풍족한 세상인가. 또 얼마나 묘한 세상인가. 죽어도 썩지 않을 것만 같은 아는 맛만 박스째 쌓아두고 사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건강 걱정이 태산이니. 건강하시죠. 오늘도 당연스럽게 안부를 묻는다.


요새 철이 아니라 못 먹는 게 몇이나 되나. 비닐하우스며 냉동 기술이며 시대가 시절을 앗아가 이제는 언제 무엇이 제철인지도 헛갈린다. 경험적 공유보다 포털사이트의 몫이 커진다. 철마다 묻는다. 제철 음식은 무언가요? 딸깍. 검색 기술의 지시를 따라 꿀꺽 뱃속을 채운다.  


세파에 잃어가는, 혹은 잊혀가는 나의 복숭아나무들이 모조리 꺾여 버릴까 마음이 달싹거린다. 모두 떠나가 버릴까 제철을 누리지 못한다. 찌뿌드드한 마음은 철마다 사면으로 질문을 던지랴 때를 놓친다. 우리의 제철은 언제인가요? 언제인가요? 묻기만 하다 배를 곯는다.


인기 있는 먹거리만이 제철의 한계도 모르고 1년 365일 꽃 피우는 것 같다. 그 사이 나의 복숭아가 영글 틈은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알알이 알맞은 때는 분명 있다. 더 맛 좋고 풍부한 영양에 아는 이는 그때만을 기다리게 하는, 각개의 때가 있다. 당신의 제철은 분명 온다.


건강하려면 바로 지금, 제철 음식을 먹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나는 나의 복숭아를 먹을 테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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