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1993.09.28
얼마 전 친구가 다른 친구와 싸웠다고 상담을 해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럴 때에는 누구의 잘못인지 잘잘못을 따지며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떠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결코 결론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스물아홉이 되었다. 그 둘 사이에는 그들만의 히스토리와 뉘앙스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만이 정확히 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고로, 나는 그 누구의 잘잘못도 판단할 수 없었다.
아프지 않았던 20대가 있을까 싶지만, 나의 20대는 더 아팠던 것 같다. 어떤 때에는 나를 탓했다가, 내 옆의 친구에게 탓을 돌려보고, 매일같이 부대끼는 가족을 원인 삼았다가, 또 결국 다시 나에게 그 책임을 온통 씌워 버렸다. 그 과정을 10회쯤 반복하다가 20대의 마지막 해를 결국 맞이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요즘, 그 누구 때문에 아팠다는 게 맞지 않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냥 그때 그 상황들이, 나는 이해할 수 없을 수많은 맥락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놓여있었던 그 모든 상황이 사실은 나 혼자 만들어갔던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나의 아픔의 원인이라고 탓했던 사람들이 쌓아온 수많은 맥락 속에서 빚어졌을 것이기에. 이제야 비로소 당당하게 보일 수 있는 나의 스물아홉 살도 그러한 여러 가지 상황의 경우의 수들이 만들어낸 것일 테다.
유난히 다양한 사건들을 맞이 했던 20대. 어느덧 10년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내 안에 크게 자리 잡은 사건은 첫 남자 친구와의 이별이다. 이별 자체가 큰 사건이라기보다는, 그 전개과정이 나에게는 여전히 나름의 스펙터클로 남아있다. 나의 20대 첫 연애는 대학교 캠퍼스 커플, 그중에서도 같은 과 CC였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 끌리던 때였다. 달라 보이지만 생각이 닮은 것 같아서 오히려 의심 없이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 친구와 요새 잘 지내고 있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듣게 된 이야기들과 사건들, 그로 인해 벌어진 제삼자들의 말과 시선들. 그들의 눈빛과 말들이 나의 20대 첫 아픔의 시작이었다.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무럭무럭 자랐다. 영문과에 모씨 성을 가진 남자애가 술 먹다가 술집에서 여자랑 키스를 했다더라. 근데 그 남자애는 캠퍼스 커플 하고 있는 애래. 키스한 여자가 같은 과 다른 선배라더라. 그 여자 선배가 화장실을 따라갔대. 둘이서 화장실을 나와서 남자애 자취방을 갔다던데? 여자애가 들이댄 거래. 근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 아니겠어? 걔네 문제로 고학번들이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 중 이래. 아무래도 여자애가 선배니까 고학번들이 선배를 보호해주려고 한대. 근데 여자애가 사실 다른 남자애들이랑도 스킨십 했는데, 그 남자애가 씨씨라서 소문이 더 커졌대. 그 씨씨 여자애가 이름이 이건데, 어떻게 생긴 앤 데, 저런 앤 데…
그렇게 여름방학 어느 날 밤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관계를 겪게 되었다. 신기했다. 뒤에서 나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던 어떤 선배는 학회 이벤트에 와서 내가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밖으로 나와보라고 했다. 그 선배의 친구가 바로 그 날 밤 사건의 여자 선배였다. 점심을 함께 먹던 사람은 나에게 박수도 혼자 치면 소리가 안 난다는 말을 했다. 신기해서, 그날은 점심이 넘어가지 않았다. 어떤 수업을 가도 우리 과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내 이름이 들렸다. 신기했다. 모르는 선배들이 그날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막지 못해 미안하다며 페이스북 메시지로 나한테 밥을 먹자고 했다. 신기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나면 매일 저녁을 울었다. 크리넥스는 하룻밤에 한통씩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 아빠한테는 침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던 아빠가 미워졌다. 이상한 나를 눈치채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를 멀리하고 싶어졌다. 같은 학교를 다녀서 든든했던 오빠가 제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어느 날은 원인이 남자 친구였다가, 어느 날은 그 사건의 여자 선배였다가, 어느 날은 다른 과 사람들이었다가, 어느 날은 나였다. 원인이 나였던 날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아팠다. 그 상황을 만든 게 나 같아서 아팠고, 그 상황에 놓인 나를 그대로 놓아두고 있는 게 나 같아서 아팠다. 스스로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날들이 왔다가도, 소주 한잔만 먹으면 신세를 한탄하는 내가 되었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 지지 않았다.
구체적인 과정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회복되어 온 건지. 그 이후에 있었던 또 다른 슬픔이 나를 치유한 건지, 혹은 행복이 나를 치유한 건지. 몇 년 뒤 친구가 건넨 '그 정도로 힘들었는지 몰랐다'라는 무책임한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오기가 되어 치유하게 되어버린 건지. 이후 다른 친구들에게 나도 똑같은 무관심과 무책임을 발산해가면서 해소해온 것인지. 날 힘들게 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살겠다는 오기로 시작했던 시험공부를 그만두면서, 새로운 아픔에 이전의 아픔을 해소하게 된 것인지.
스스로 치유되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은 그때 그 상황들이 나를 아프게 했고, 또 그때의 다른 상황들이 나를 회복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은, 이 생각도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발명한 사고방식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를 탓해서 아팠고, 내 친구를 탓해서 아팠고, 가족들을 탓하다가 또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아픔에 아픔을 더했던 일들이 위안으로 느껴져 무덤덤해지는 과정이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팠던 날들의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또 그때의 나에게 고맙다. 하지만 지금도 그날의 내가 생각나는 날에는 마음이 아프고, 원망스러웠던 사람들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여전히 상황만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해지기도 한다. 앞으로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혹여나 겪게 되더라도 마음 아프고 싶지 않은 나는, 아직도 어린 내가 아프던 날이 생각날 때에는 여전히 마음이 아린다.
30 ± 1,
[스물 아홉: 스물 이후 아홉 번쯤 아프던]
written by RHIM
RHIM, born in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