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수 Dec 09. 2021

2) 서른: 스스로 서게 되는 어른 -RHIM

Born in 1993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밝아 보이는 사회생활 버전의 나를 좋아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곧잘 질문을 하고,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에 가서 놀면 좋은지, 그 동네 맛집은 뭐가 있는지 꿰뚫고 있어 보인다. 옷에도 관심이 많아서 기분에 맞춰 밝은 옷, 어두운 옷 TPO에 맞게 입고 다닌다. 저녁이나 주말에는 곧 잘 사치스러운 레스토랑에 가기도 한다. 걱정 없이 먹고 노는 것을 즐기며 세상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나로 살다가 MBTI 검사를 하면 '대가리 꽃밭'이라고 불리는 ENFP가 나오기도 한다.


어두운 이야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갈등을 겪어본 적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딱히 집이 어려워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어두운 경험을 겪을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한테 말도 쉽게 잘 걸고,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성격이 좋은 것 같다. 이런저런 일에 기분 상한 것 같지 않는 걸로 봐서 쾌활한 성격에 쉽게 상처 받지도 않는 성격 좋은 친구인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는, ENFP로 살아가는 나에 대한 평가는 대략 이렇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기가 나에게 시험 준비를 했던 경험을 물어봤다. 본인 친구 중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우울증이 온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우울증. 흔해진 단어이지만, 그만큼 피상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던 우울증을 언젠가 나는 몸소 체험했다. 어찌 보면 상투적인 이야기의 흐름이지만, 나 역시 시험 준비를 끝마치는 과정에서 우울증에 걸렸었다.


처음에는 우울증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병명을 생각해낼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을 '나 왜 눈을 떴지'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그냥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냥 그렇게 영원히 잠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시험을 그만두기로 한 시기에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멀쩡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누워있다가 식사를 했고, 오후에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이것저것 보다가 밤에는 다시 누워서 쉬다가 잠이 들었다. 내 방 밖에서 본 나는, 어쩌면 멀쩡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방안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밤에는 '앞으로 뭐하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나는 왜 시험에 실패했는지, 나라는 사람이라서 실패한 건 아닌지, 나라는 사람은 결국 잘못된 건지, 그렇다면 태어난 게 잘못된 게 아닌지, 라는 생각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어 한참을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나면 창틈 사이로 밝아지는 빛줄기를 느끼면서 정신을 차리기 일쑤였다. 과거를 수없이 되돌이켜보면서 결국에 '나는 잘못된 사람이라서 그동안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기만 수백 번이었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 몸과는 다르게 머릿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바빴다.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반응할까 봐 창틀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상상 속으로는 창틀 근처에 가서 1층을 내려다 보기도 했고, 영화에 흔히 나오는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상상력은 그 이후에 슬퍼하는 아빠랑 엄마까지 늘 이어지곤 했다. 그 정도로 우는 아빠와 엄마를 본 적도 없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내던져진 내 몸을 내려다보면서 슬프게 우는 엄마랑 아빠가 어찌나 그렇게도 자세히 상상이 되던지.


그래서 못했다. 밤을 새워가면서 '왜 태어났을까' 수없이 생각하다가도, 끝내 나는 죽을 수 없다는 결론을 늘 십계명처럼 되내이곤 했다. 설령 지금의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래도 나는 이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고. 그것은 수백번, 수천번 반복했던 나의 머릿속의 상상에서 싸늘하게 죽은 내 몸을 내려다보며 슬퍼할 엄마 아빠의 모습이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나의 결론이고 다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로부터 어떤 말을 듣게 되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밥이 먹기 귀찮다고 말하자 엄마가 지나가듯 툭 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엄마는 "그 정도가 귀찮으면 일찍 (관에) 들어가서 잠들라"고 말핬다. 그 말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엄마의 지나가는 말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지나칠 수 있는 힘도, 여력도 없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매일 밤 되내이며 끝내 피하고 있는 그 단어를 엄마의 입에서 들었을 때의 심정이란.


어이없게도, 그제서야 나는 일어났다. 심리상담을 받고, 친구들과 만나서 힘들다고 울기 시작했고, 독립을 하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다. 밖에 나가 활동을 하기 시작하니 몸이 힘들어졌고, 밤에는 잠이 절로 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물이 나던 상처에 마데카솔을 발라 한 꺼풀 덮인 것처럼 나는 멀쩡 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일으킨 것은 시험에 대한 실패보다도 커져버린 엄마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내가 더 잘 살아보겠다는 오기만이 남아버렸다. 오기를 위해 살다 보니, 내가 잘 사는 게 너무 중요해졌고, 잘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나 자신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는 이루고 싶은 게 너무 많아져서, 그 외의 부가적인 감정들을 잊기 시작했다.



불과 1년이 채 안된 일이었다. 이렇게 몇 줄로 정리되는 시간들이 나에게는 몇 년 동안의 긴 터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참, 또다시 신기해진다. 엄마의 말 한마디를 오해해서 생긴 오기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원하는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바로 서고자 하는 내가 느껴진다.


이제는 누군가의 말에, 어떠한 상황에 휘청이지 않고, 나 스스로 온전히 서있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려고 한다. 서른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가고 있다.



30 ± 1,

[서른: 스스로 서게 되는 어른]

written by RHIM

born in 199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1) 스물아홉: 스물 이후 아홉 번쯤 아프던 -RHI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