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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Dec 10. 2021

금쪽같은 뇌 새끼 -윤미리

Born in 1993.03.08


아래의 글들은, 윤미리의 머리에 관한 것들이다.



머리 1) 모발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모발이다. 모발의 개수와 두께. 쉽게 말해 탈모이다. 결국 최근에 LG프라엘의 메디헤어를 100만 원 넘게 주고 샀는데, 그 어떠한 명품백보다 나에게 만족감을 준다(누가 보면 명품백 있는 줄).

이틀에 한 번만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일부러 첫 째 날은 출근 전 새벽에, 그리고 둘째 날은 자정이 넘어가기 직전에 할 때도 있다(이 정도면 이틀 텀이지 훗). 28분짜리의 토털 케어로 현재까지 7회 사용했는데, 점점 영토를 확장하던 가르마 부분의 상아색 두피가 쪼그라듦을 느낀다. 궁금한 분들께는 한 달 후기를 공유하겠다.


머리 2) 뇌내 망상

MBTI로 따지면 극심한 N유형인 나는 뇌내 망상을 쉬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다. 낮에는 대체로 그때그때 눈앞에 보이는 물체와 연관된 상상을 한다. 가령, 내가 걸어가는 보도 블록이 재난영화에서 처럼 뒤에서부터 땅으로 꺼지기 시작한다면? 나는 몇 미터까지 뛰다가 떨어지게 될까? 와 같은.

밤에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상상&생각한다. 남자 친구와 사귀고 첫 2~3년 동안은 “우리 처음에 카톡 한 내용 기억나? 완전 오글거려~ 그때 내가 만약에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대답했으면 어떻게 했을 거야?” 와 같은 말을 정말 너무너무 너무 많이 한 것이다. 참다못한 남자 친구가 “과거에 왜 그렇게 집착해!!!?”라고 답한 적도 있었다.


머리 3) 기억하는 능력

난 기억력이 너무 나빠서 29년 인생 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몇 가지 없다. 정말 특정 모먼트만 기억에 남는데, 그것들은 사실 내가 수도 없이 밤에 되새김질하며 생각하고 또 상상했던 장면들이다. 특히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일부러 계속 되새김질하고, 상상을 통해 기억에 살을 덧붙이기도 하고, 그러는 과정에 각색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들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되었다. 어쨌든 이것이 내가 기억을 하기 위해 발휘하는 능력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문제는 요즘 나의 머리 1, 2, 3이 모두 멈추었다는 것이다. 모발의 성장이 멈추었고, 더 이상 상상하거나 생각을 되새김질하지 않으며, 따라서 기억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일상을 살고 있다.


아주 오래전(10월 4일) 초대를 받은 [30±1], 그때 나는 뭔가 그럴싸한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꽤나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이미지는 그랬다. 그리고 남들이 보는 이미지도 그렇기 때문에 응당 이 프로젝트에 초대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글의 주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거라곤 “요즘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이 고통(?)을 주최자님에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본인도

“요즘 아무 생각이 없음,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음. 생각 없이 사는데도 이것 모두 코로나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며 죄. 책. 감. 을 덜어낼 수 있음”

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내가 요즘 유일하게 하는 생각인 ‘생각 없음’에 대해 털어놓는 글이라도 써보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침 또 유일한 걱정 중 하나가 ‘머리 없음’이라서, 머리 1, 2, 3으로 글을 구성해 보았다.


이 글을 계기로 나의 머리도 자라나고, 생각도 자라나서, 자라나는 윤미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문을 외워본다.


ㅈㄹㄴㄹ ㅁㄹㅁㄹ

자라나라 머리머리

자라나라 미리미리!





+ 5 days later…

(30±1 글 제출 5일 뒤)



내 글도 누가 읽어주긴 하려나.. 싶은 마음으로 찝찝하게 30플마원(30±1)에 글을 제출하고 5일째 아침. 굿모닝. ❛˓◞˂̵✧


양치질을 하면서 어진 작가님의 글을 읽고,

“아.. 아더 대자래싀겨 할래”(나도 대장내시경 할래라는 뜻. 이것보다 많은 감상이 있었으나 간단하게 넘어가려 한다. 이것은 내 글이니까. 훗)


하면서 화장실로 가서 양칫물을 퉤,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는데. 췟, 흰머리가 밤새 한 가닥 더 늘었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 팽팽팽…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들렸다. ‘뭐지… 출근 준비해야 하는데…?’ 뇌가 작동하는 소리…?!!!!



~뇌 속~

흰머리… 흰머리…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흰머리… , 그리고 오전 내내 잔상이 남아있을 것 같은 어젯밤의 꿈… 잔상이라고 하기엔 꽤나 선명하게 내용과 장면들이 떠오르는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생각과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좇아가다가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아, 잊고 있던 뇌 새끼.. 의 소리다. ‘나는 왜 요즘 생각이 없는가’에 대해 앞서 괴로움을 토로했었는데, 12월 3일 이 바쁜 아침 출근 시간의 뜬금없는 타이밍에 내 뇌는 억울함을 토로했기 시작했다.


“네 뇌가 생각이 없다고? 아닌데? 아닌데? 나는 여지껏과 같이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을 되새김질하고 상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열도 훅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너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들고, 네가 매일 몸이 피곤할 만큼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도 꾸게 하는 건데, 생각이 없다니? 난 억울한데? 무슨 개소리를 적어서 제출한 거얏?! 윤미리 나쁜 X!”




아… 맞아. 원래 내 뇌는 이렇게 시끄럽고 억척스럽고 끈질겼다. 쉬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고, 생각을 제안하고 상상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하지만 만으로 27년을 이 시끄러운 뇌 새끼와 지내다가 한국 나이로 29살이 되던 올해, 난 지친 것이다. 급격히 줄어든 체력으로 이 지랄 맞은 뇌의 수다를 계속 들어주는 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 가까운 사람의 가까운 사람의 죽음, 5년 차 직장인으로서 일에서 오는 무력감, 2년을 넘겨가는 코로나, 드디어 체력과 정신이 바닥났다. 그래서 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뇌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서, 뇌를 남겨두고 빠져나왔던 것이다.


탈.


계속 굴러가는 뇌를 저기 놔둔 채,  ‘나는 요즘 아무 생각 없이 살아ㅜㅜ 멍청이야…’라고 고통을 토로할 정도로 뻔뻔하게 뇌체이탈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이 뇌 새끼의 소리가 들리는 이상, 내 뇌를 되찾아야겠다(생각 없음이 두려워졌기도 하고). 근데 또 말이지? 이 뇌새끼가 내가 원하지도 않는 생각을 무한대로 해대며 멈춤 없이 수다를 떠는 것을 예전처럼 들어줄 체력은 앞으로도 생겨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의 30대의 목표는 ‘뇌새끼 잘 훈육하기’이다. 일명 금쪽같은 뇌새끼 프로젝트! 뇌가 잘 자라도록 경험을 넣어주고, 창의적으로 상상하도록 놓아주되, 혼자 마구잡이로 날뛰며 과열되게 고민하거나 스트레스받을 때에는 “그만.(단호한 투로) 아니야. 지금 더 생각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멈추는 거야. 그만.”이라고 훈육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나의 뇌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그래서 윤미리의 머리가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30대에는 내가 나의 뇌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워본다.



30대에도

ㅈㄹㄴㄹ ㅁㄹㅁㄹ!




30±1,

[금쪽같은 뇌새끼]

Written by MIRI YUN

@scentimiri

윤미리, born in 199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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