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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Jun 12. 2023

그래서 카페랑 선글라스가 뭔 상관인데? : 젠틀몬스터

공간으로 승부한다, 젠틀몬스터

젠틀몬스터, 누데이크, 탬버린즈. 이 브랜드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름은 모르더라도 제품 사진을 보면 감성 카페를 많이 가는 친구 인스타 스토리에서 많이 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각각 아이웨어, 디저트, 스킨케어를 다루는 브랜드인데 이 세 브랜드가 패밀리 브랜드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덕분에 몇 달 전 친구를 따라갔던 카페 위층에서 왜 선글라스와 핸드크림을 파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렸고요.

젠틀몬스터에서 런칭한 F&B 브랜드 '누데이크', 사진 출처 : 고메빛찬 브런치

전 평소에 디저트를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니고 커피도 hot과 ice밖에 구별을 못하기에 카페를 자주 가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인스타에 많이 뜰 법한 감성 카페를 어쩌다 한 번씩 갈 때면 웬만한 밥 한 끼 값과 마주하는 금액에 다소 벙찌곤 했는데 누데이크도 예외는 아니었죠. 케이크 하나에 4만 원이란 가격을 보고 '인스타가 세상을 다 망쳐놨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뭔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평당 1억에 육박하는 압구정에서 온 자리를 테이블과 의자로 채워놔도 모자랄 판에 카페 한가운데 떡 하니 모형 디저트를 종류별로 길게 전시한 걸 보고 전 이 카페가 1년 안에 망할 걸 직감했습니다. 비싼 가격과 낮은 회전율, 지하까지 내려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6개월 반짝하고 사라지는 감성 카페의 모든 걸 담고 있었으니까요. 

중앙에 전시되어 잇는 모형 디저트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크기의 디스플레이. 테이블과 의자는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사진 출처 : 젠틀몬스터 홈페이지

물론 제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고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철학을 조금이나마 살펴보고 나니 아이웨어 브랜드가 왜 F&B 브랜드를 런칭했는지, 왜 카페의 멀쩡한 공간을 낭비했는지 이해됐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젠틀몬스터는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공간'에 집중한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온라인 스토어를 열 수 있는 이 시점에서 보름(또는 월)마다 매장 인테리어를 컨셉에 맞춰 갈아엎는 프로젝트나 상업공간이라기보단 아트 갤러리에 가까운 독특한 매장들은 무의식적으로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이끌죠. 단순히 선글라스 판매를 1순위로 두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공간에 들어서는 시간부터 시각, 미각, 후각 등 모든 감각들을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에서 겪는 경험으로 이어지게 디자인한 것은 매우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보름, 또는 월마다 컨셉에 맞춰 인테리어를 바꾸는 젠틀몬스터의 '퀀텀 프로젝트'사진 출처 : jtbc 뉴스

젠틀몬스터 매장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은 제품 컬렉션이 아니라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 화려한 조명과 갤러리가 눈을 사로잡습니다. 판매 상품인 선글라스는 2층에 올라가서야 보이거나 아니면 매장 구석진 곳에 무심하게 툭 놓여있죠. 매장이 단순한 오프라인 판매처의 의미를 넘어선 놀이문화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독특하면서 힙하고, 구찌나 샤넬 매장처럼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온리인 상 바이럴이 가능해집니다. 결국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셈이죠. 

조형물이 돋보이는 젠틀몬스터 매장, 사진 출처 : 젠틀몬스터 홈페이지

공간은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여행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 황홀함을, 삭막한 수능 시험장에서 OMR 카드를 작성할 때는 긴장감을,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는 차분함을 느끼는 등 물리적 공간이 심리학적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감정은 우리의 기억 깊은 곳에 깊숙이 저장됩니다. 이성을 개처럼 굴려 아무리 시험기간에 열심히 외워도 일주일 뒤면 다 까먹지만 오래전 처음 비행기를 탈 때 인천공항에서 치킨버거를 먹은 기억과 논산훈련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먹었던 불고기의 맛이 완벽하게 기억나는 이유도 감정이 격하게 연관된 기억이기 때문이죠.


젠틀몬스터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공간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젠틀몬스터의 패밀리 브랜드 '누데이크'가 왜 매장 한가운데 자신들의 디저트 모형을 전시했는지도 이해가 갑니다. 단순히 디저트를 팔겠다는 일차원적 목표가 아닌 소비자들이 누데이크에 오는 것만으로 색다른 감정을 느끼게 만든 거죠. 디저트가 지닌 본질인 '맛'에 집중했다면 이렇게 큰 하잎을 받진 못했을 겁니다. 누구에겐 왕창 들어간 생크림이 환상적이고, 누구에겐 너무 느끼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우린 모두 각기 다른 입맛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간이라면 공간에서 얻는 감정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입맛이 달라도 누데이크가 주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분위기는 비싼 가격과 얼마 없는 좌석에도 불구하고 누데이크가 압구정 핫플로 자리 잡은 이유겠죠.


지금껏 인스타 감성카페들이 피드에 뜰 때마다 '또 어떤 부잣집 자제님이 커피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나'하는 염세주의적 사고를 하곤 했는데 젠틀몬스터까진 아니더라도 각자의 스토리와 브랜딩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전국에 계신 카페 사장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도 커피 한 잔에 7000원은 가난한 대학생에겐 너무 비싸지 않나요?


분량상 젠틀몬스터 패밀리 브랜드인 '탬버린즈'는 다루지 않았지만 한번 검색하셔서 브랜드 스토리를 찾아보셔도 재밌습니다. 특히 향들의 조합을 코딩처럼 숫자로 표기한 것도 너무 재미있는 아이디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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