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건 다해줄게, 스타벅스
얼마 전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다 이러다 세상과 영원히 단절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맥북도 있겠다, 집 앞 스타벅스로 갔던 적이 있습니다. 왠지 돈 많고 성공한 20대가 된 거 같은 느낌이 5초 정도 들었지만 황급히 기프티콘이 있는지 확인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본가에 얹혀사는 20대 백수인 것을 다시금 깨달았죠.
줄을 서면서 사촌누나가 준 기프티콘을 사용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손님 한 분이 되게 길게 뭐라 뭐라 말씀하시는 걸 의도치 않게 들었습니다. 단순 메뉴를 말하는 게 아니라 무슨 프라푸치노에 유기농 뭐로 바꾸고 파우더, 자바칩, 휘핑과 아이스크림 등 한참을 말씀하시는데 전 속으로 '알바생 개빡치겠다'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고 알바생의 표정을 봤는데 되게 평온한 목소리로 눈웃음을 하며 상냥하게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마스크 뒤에 입은 욕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요. 그걸 보며 알바생이 대단하다 느끼면서도,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와 달리 유독 스타벅스가 붐비는 이유를 커스텀 메뉴의 활성화와 연관 지어 생각해 봤습니다.
바야흐로 소비의 시대입니다. 이젠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게 있으면 내 취향껏, 마음껏 살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죠. 완벽한 자본주의 사회다 보니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고, 다원화된 소비자의 욕구를 생산자가 따라가다 보니 소수의 취향만 제대로 적중해도 성공하는 사회가 도래했습니다.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색상과 크기를 마음대로 커스텀 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냉장고처럼 말이죠.
왜 이런 소비의 시대가 도래했느냐에 대한 저의 생각은, 현대사회에선 소비가 가장 쉽게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발휘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면, 지난 몇 십 년간 급격한 산업 변화와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교육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유학기제, 학점 취득제 등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커리큘럼이 등장하긴 했지만 마침표는 대학입시라는 점에서 전체적인 사회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대학입시라는 강제된 억압이 끝나도 대한민국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졸업과 취업 등 다음 챕터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있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게 일종의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 모든 것이 철저히 계산된 문명 속에서, 자신의 개성과 주관을 드러내기보단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자본의 흐름에 맞춰 달리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자신을 자본주의 톱니바퀴 속 하나의 부품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는 현대인도 많아졌고요. 아마 이 부분에서 모든 현대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획일화되고 강제된 선택 속에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쉽고 빠르게 자신의 개성과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취향껏 하는 소비입니다. 출근하기 싫은 직장을 때려치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려니 당장 다음 달에 낼 월세와 생활비가 막막하고, 커트 코베인 뺨치는 락 스피릿을 뽐내기 위해 기타를 배워볼까 하지만 퇴근 후 남는 2시간을 짬 내서 기타 학원에 가는 건 쉽지 않죠. 하지만 오늘 점심시간에 스타벅스에서 나만 아는 시크릿 메뉴를 직장 동료에게 소개하며 내 취향을 공유하는 건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미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13가지 퍼스널 옵션을 한 손님은 너무하지 않냐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스타벅스 직원을 바로 해고할 만큼 회색 도시 속 소비자의 존재 표출 욕구를 온전히 존중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취향을 온전히 드러내도 눈치 받지 않고 오히려 '먹을 줄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행위는 모든 것이 정해져있는 현대사회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고, 스타벅스는 이 탈출구를 세련되고 간편하게 제공했습니다. 이 점이 스타벅스가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커스텀 메뉴의 활성화 말고도 스타벅스가 성장한 이유는 많겠지만, 무채색밖에 없는 서울 한복판에서 8000원으로 잠시나마 좋아하는 색깔을 칠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도피처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전 8000원까지 쓸 용의는 없지만 나중에 누가 스타벅스를 사준다면 알바생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한번 저렇게 말해보려고요.
말차 프라푸치노에서 베이스는 라이트 베이스, 두유로 바꾸고 그린파우더 5술, 자바칩 반반, 휘핑에 초코 드리즐 추가요. 아, 휘핑은 두유 휘핑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