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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Sep 19. 2023

소비되는 게 싫은 거잖아

쳇 베이커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아마 새벽 3시쯤이었나. 몇은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피고 있고 몇몇은 야외 테이블에서 크랜베리 주스와 위스키를 섞어 홀짝댔던, 한바탕 술자리가 끝나고 담배 향과 모기향이 제멋대로 뒤섞여 퀘퀘한 냄새가 비릿하게 났던 밤.


수염을 멋있게 기른 친구는 생전 처음 듣는 밴드와 노래들을 약간의 흥분과 함께 말하고, 매주 직접 머리를 자르는 친구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전자음악을 얘기했던 밤.


데스메탈을 좋아하는 친구의 플레이리스트와 커버 밴드 영상을 보며 낄낄대던 중 이어지는 친구의 고백.


'사실 나 말랑말랑한 것도 좋아해. 어렸을 적 재즈 피아노도 쳤었고 재즈도 꽤 들어. 쳇 베이.... 아 됐다'


언제 한번 유튜브를 뒤적이다 플레이리스트로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거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 쳇 베이커의 이름이 끝맺음을 내리지 못하고 공중에 떠다니다 캡 모자를 쓴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


'나도 쳇 베이커 좋아해. 근데 형은 쳇 베이커가 소비되는 게 싫은거지?'

.

.

.

.

몇 주가 지났는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문장이 생각난다.


'소비되는 게 싫다'라는 말이 주는 폭력성.


터치 한 번과 검색 한 번으로 어떤 정보든 얻을 수 있는 사회에서 소비가 주는 의미와, 그들이 싫어하는 대상이 과연 무엇인지. 좋아요 버튼으로 드러내는 자신의 취향이 오염되는 것이 싫은지, 얄팍한 지식으로 구도자인 척을 하는 자들이 싫은지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던 날들.


근 몇 달간은 이러한 친구들을 따라가려고 아등바등. 취향을 강제로 바꾸고 깨어있는 척, 남들과는 다른 척하려 발버둥 쳤지만 이어지는 건 결국 누군가를 따라 하는 A에 불과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말하라고 하면 한 달 전 처음 들은 노래의 제목을 찾느라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날들.


따라 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자세. 취향이 아니어도 꾸역꾸역 듣지 말고 좋으면 저장, 안 좋으면 유감.


당당하게 Nirvana의 2집밖에 안 들어봤다고 말하기. 기리보이와 악동뮤지션 좋아한다고 말하기. 검정치마 어떤 곡을 좋아하냔 질문에 제목은 모르고 또 오해영 ost가 좋았다고 말하기.


이미 10대에 결정난 내 취향을 억지로 바꾸려 들지 말기.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며 취향의 본질은 유지하되 저변을 넓히기.


어차피 돈도 노력도 안 드는 소비. 왕창 소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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