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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척하는 겁쟁이 Dec 08. 2021

영혼을 잃어버린 돼지고기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으며

남편과는 주말부부, 첫째 딸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주로 저녁은 중학생인 둘째와 단 둘이 단촐하게 먹곤 한다. 게다가 이 녀석은 소식가라 한번 음식을 하면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아 둘이 먹는 평일에는 며칠 동안이나 내내 같은 메뉴를 소진하느라 지겨울 때가 많다.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메뉴를 며칠이고 먹는 셈이지만 둘째는 나름대로 미식가이다. 음식의 부족한 부분을 잘 탐지해 내고 그에 어울리는 양념이나 재료를 첨가할 줄도 안다. 맛의 미묘한 차이도 잘 발견하고 재료의 신선도도 잘 감지한다. 


그래서 내가 요리 하고 있을 때는 기웃거리며 "국물 요리에는 파를 넉넉히"를 외치거나 

"곰탕에는 면 사리를 따로 삶아 넣어달라"라고 부탁하기도 하며 "어묵국을 만들 때는 동봉된 스프에 의존하기 보다는 육수를 직접 내어서" 하길 은근히 참견한다. 할머니가 시골에서 직접 짜오신 참기름의 맛을 보고 엄지척!을 하며 "이제 마트 참기름은 못 먹겠다" 한다. 아침식사로 빵은 싫고 한식이 좋은데 그것도 탁한 국물은 넘기기 힘들다고 시원하고 맑은 국을 대령해 달라 하니 웬만한 시어머니 저리 가라하는 사춘기 소녀 되시겠다.


오늘도 주말에 끊인, 며칠 동안 냉장고를 지키던 김치찌개를 데워서 둘째와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둘째는 밥을 먹다가 김치 찌개에 들어 있던 돼지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들며


"엄마, 음....이렇게 김치찌개에 들어 있는 고기는 영혼이 없는 것 같아."

"그래? 어째서?"

"고기의 형태는 흐물흐물하고 고기 본연의 맛은 느껴지지 않잖아."

"그렇지. 고기의 육즙이 국물에 다 녹아 나왔을테니까. 근데 영혼이 없는 돼지고기라....완전 문학적인 표현인데?"

 내친 김에 즉석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제목으로 시를 한 수 지어본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뜨거운 국물 속에서 너의 육즙과 진액을 녹여 너는 감칠맛 나는 김치찌개가 되었다.

                             너의 영혼과 어우러져 김치찌개는 비로소 김치찌개 다워졌지만

                       너의 영혼은 빈껍데기만 남아 식어가는 국물 속을 정처 없이 떠 돈다. 

                    싱그러웠던 너의 영혼은 이제 그의 일부가 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구나. 


나의 딸들이 왜 항상  "고기는 구워 먹어야 제 맛"이라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국물에 빠진 고기는 영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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