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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척하는 겁쟁이 Dec 09. 2022

나의 자존감 지킴이들

말의 힘

나에게는 딱히 내세울 만한 특기가 없다. 대한민국 평범한 사람들처럼 어떤 것이든 그저 중간 이상만이라도 하자는 소신대로 뭘 하든 딱 중간 이상만 한다. 보통 사람의 평균치보다 약간 웃도는 그림실력, 음악 실력, 영어회화, 운동, 컴퓨터 능력 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어디 가서는 잘한다 명함은 내밀 수도 없고 이걸로 밥벌어 먹을 능력도 안되는 그저 그런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나도 초등학교에서는 찬사와 칭찬의 대상이 된다.(으쓱)



5학년 아이들과 배드민턴 수업 하던 날이었다.

대부분 배드민턴채를 처음 잡아보는 아이들에게 파트너가 되어 주려고 함께 배드민턴을 치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배드민턴 선수였어요?" 란다.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 들어가도 초보 소리를 들을만한 내가 공을 안 떨어뜨리고 받아내니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선생님이 엄청나게 잘 치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으쓱)


4학년 아이들과 미술 수업을 할 때다.

아이들이 과자 봉지를 보고 따라 그리는 것조차 어려워 낑낑 댈 때 연필로 대강 구도잡고 그려 주었더니

"우와~선생님 옛날에 미술 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 화가예요?" 라며 내 그림을 보려고 몰려든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것도 그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으쓱)



6학년 영어 전담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첫 시간에 영어로 외워 간 자기 소개를 유창하게 한 다음에 한국말을 썼더니 한 아이가 깜짝 놀라며 

"선생님, 한국 사람이었어요? 처음에 미국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며 정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아이는 자기 부모님에게 내가 유학파라고 말했단다. (머쓱)



5학년 아이들은 나의 저렴하지만 새로 산 자가용을 보고도 

"와~ 선생님 차 좋다. 선생님 부자예요?"라고 말하며 타보고 싶어 한다. 




 1~2학년 아이들은 나에게 동물 그림 따위를 그려 달라해서 내가 연필로 대강 그려 주면 그것이 대단한 작품도 아닌데 소중하게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간다. 때로는 선생님의 작품(?)을 서로 갖겠다며 싸울 정도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연습으로 그리고 버린 그림조차 재활용통에서 건져내어 '이걸 내가 가져도 되겠냐'며 조심스럽게 물어 온다. 


아이들의 순수한 찬사와 칭찬을 들을 때마다 사실 마음이 벅차오른다. 평범한 나를 대단하게 보아주고 나이도 많은 나에게 예쁘다고 해준다. 내가 하찮게 여긴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 주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버린 쓰레기조차 작품이 되고 다시 빛을 얻는다.  스스로 잘 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채찍질 했던 나의 과거 상처들에 새 살이 돋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칭찬에 보답하고자 한다. 어설픈 작품에도 영혼을 담아 멋지다고 말해 준다. 글씨가 삐뚤빼뚤 하지만 귀여운 글씨체라고 말해 준다. 네가 쓴 글이 정말 재미있고 기발하다고 큰 소리로 읽어 준다. 너는 좋은 아이라고 말해준다. 너는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리 해도 아이들이 준 사랑을 나는 평생 못 갚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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