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센척하는 겁쟁이 Dec 23. 2023

시아버지가 사고를 치셨다!

시부모님이 오래도록 시무해 오셨던 시골 교회에서 손을 떼고 은퇴하신지 어언 일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은 정정하시고 열정도 넘치시지만 아내의 건강을 위해 시아버지는 아쉬움을 남기고 평신도의 삶으로 돌아오셨다. 수 십년간 살던 시골을 떠나 인근 소도시의 작은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시고 늘 교회로 출퇴근 하던 발걸음을 동네 곳곳으로 돌리셨다. 


우리 아버님으로 말하자면 속된 말로 생불(生佛)이시다. 순도 100% 신앙을 가진 기독교 목사를 부처에 비하다니 불경스럽기 그지없지만 그 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늘 인자하시고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다. 아내(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복장 터지겠지만 세상 욕심이란 1도 없어서 입은 옷까지 거지에게 벗어 주시고 선교 나가시면 1달러까지 탈탈 털어 주고 오시는 분이다.

목회를 시작한 이래 돈, 성공, 명예 따위는 돌처럼 여겨 오셨기에 80이 가까운 나이까지도 수중에 집 한채 없이 임대아파트에 살고 계신 것이다. 



욕심도 없고 내성적이고 말수도 적으신 그런 아버님이 어느날 사고를 치셨다. 

새 아파트에서 노인회 초대 회장 선거를 하는데 회장으로 당선 되신 것이다!!


앞서 말한 명예욕도 금전적 욕심도 없으시다는 며느리의 호평이 무색하게 본인이 자원하여 선거에 나가셨다고 한다. 

"아버님! 아버님 그런 분이셨어요? 그렇게 회장 자리가 탐나셨어요?" 

짓궂게 묻는 며느리의 말에 아버님은 예의 그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아니... 나는 전도하고 싶은데 새 아파트라 아는 사람도 없고 사람 만나기가 어렵잖니. 그래서 그거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 아버님은 거짓말은 1도 못하시는 분이라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것! 

노인 회장 취임식때 어깨에 힘 좀 넣어 드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그런데 회장 취임식 할 때 떡 같은거 안 돌리실 거예요?" 

아버님은 그런 것까지는 생각 못하셨는지 

 "아, 그런거 해야 되는거냐?" 물으셨다.

 "그럼요. 아이들 반장 되면 햄버거 돌리 듯 아버님도 회장 됐으니 떡 돌려야죠. 그거, 제가 해 드릴게요. 떡이랑 과일이랑 보내드릴테니까 아버님이 쏘세요. 회장 당선 인사 해야죠."

며느리의 뽐뿌질에 아버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당선 썰을 더 푸신다. 

"글쎄, 선거에 나랑 다른 후보 1명이 더 나왔지 않겠니? 근데 주변 노인들이 그 후보는 평판이 좋지 않으니 뽑지 말자고 자기들끼리 얘기 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8표나 더 받아서 이겼지 뭐냐." 

"에구~ 우리 아버님 인기 많으시네. 그렇게나 압도적으로 이기셨다구요? 대단하시다!! 새 아파트 초대 회장이니까 더더욱 그냥 넘어갈 수 없죠. 그날 떡 돌리고 우리 아들, 며느리가 보냈다 하고 자랑하세요." 

아버님은 더욱 신이 나셨다.

"얘야, 너는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지 이런 걸 잘 아는구나. 나는 떡 돌리고 이런 거 생각도 못했잖니."




 그 뒤로 아버님은 며느리가 떡 보내는 걸 잊을까봐 몇 번을 더 전화하셨다.  게다가 조그만 아파트 경로회에서 얼마나 성대한 회장 취임식이 벌어지려는지 처음에 50인분을 준비하랬다가 100인분으로 늘려 주문하셨다. 옆 아파트에서도 온대나 뭐랜대나. 일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에 겁이 덜컥 났지만 

'우리 아버님 기 살려주는데 그정도쯤이야.'  의연하게 마음을 고쳐 먹었다.


두둥! 드디어 취임식 당일!

비록 참석은 못했지만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지역 시의원들도 오고 테이프 컷팅식도 하고 꽤나 뻑적지근한 행사였던 것 같다. 시아버님에게는 그럴싸한 집무실(경로당 안에 있는)도 생기고 비록 월급은 없지만 몇 만원의 업무 추진비도 지급된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날 아버님의 입은 귀까지 걸려 있었다고 한다. 내내 싱글벙글 하며 집에서는 안하던 뒷정리, 청소까지 손수 나서서 하셨다는데, 그 모습을 처음 본 어머니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한참을 구경하셨다고 한다. 


돈과 명예를 떠나서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주 근접 일터와 사무실이 생긴 것만으로도 아버님은 매우 행복하신 것 같다. 그 모습이 너무 해맑고 귀여워서 이 참에 으리으리 명패까지 제작해 드리려고 했더니 그건 오버라면서 남편이 겨우 뜯어 말렸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노여움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