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센척하는 겁쟁이 Jan 17. 2024

환갑이 넘은 삼촌과 싸웠다(1)

환갑이 넘은 외삼촌과 싸웠다. 

고성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조곤조곤 서로를 아프게 하는 말들을 가감없이 던졌다. 



 나는 8살에 아버지를 병으로 여의고 엄마는 과부가 되어 나와 동생을 데리고 외갓댁 근처로 와 살게 되었다. 갑자기 아빠가 없어진 세상은 컬러에서 흑백으로 변한 듯 했다. 활발한 골목대장 같았던 나는 급격히 말 수가 줄었고 엄마는 젊은 나이에 세상에 내던져져 어린 딸들과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해야만 했다. 외삼촌과는 물리적으로는 가까웠지만 정서적으로는 가깝지 않았다.  불행 속에 던져진 어린 나에게 자잘하지만 빼곡한 상처를 준 것은 외삼촌이었기 때문이다. 외모비하, 남들과의 비교, 인신공격, 놀림, 무시와 평가 절하 등. 그래서 나는 외삼촌을 싫어했다. 그의 장난을 가장한 공격은 나에게만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어린 사촌 동생들에게는 고작 몇 백원을 가지고 조련하듯 지금으로 치면 성추행에 해당할 굴욕적인 행동을 강요했다. 아이들의 간절함과 순진함을 이용해 맘껏 조롱하고 놀렸다. 그 와중에 자기 맘대로 휘둘러 지지 않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존심이 강했다. 마음에 동하지 않는 것은 돈으로도, 협박으로도 회유 되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사교육을 시키지도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나는 어디서나 말 잘 듣고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였지만 삼촌의 굴욕적인 명령만큼은 따르고 싶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그의 저의가 뻔히 보여서였을 것이다. 


어른들의 애정 어린 장난을 아이라고 모를쏘냐. 하지만 삼촌의 장난에는 애정이 없었다. 그는 전형적으로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을 멸시함으로 자기가 우월해진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중에 만만한 먹잇감은 편부, 편모 밑에서 자라는 나와 사촌동생들이었던 것이다. 똑같은 장난을 삼촌의 아들, 딸에게 치면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의 아이들과 우리는 달라야 했으니까. 자신의 아이들은 귀하게 자라야 하고 뭐든지 잘 하며 성공할 아이들이었고, 나와 동생들은 함부로 해도 되는 별 볼일 없는 아이들이었으니까.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시아버지가 사고를 치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