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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느님 Aug 20. 2016

99배의 노력

100배가 아닌 99배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

-


뭐 몇 가지, 지난 글에,

다음에는 이런 내용을 쓸 것이라며 예고해 둔 바는 있으나,

그건 그거고. 내 마음은 내 마음.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속,

어제 이 글을 쓰려 마음 먹었던,

며칠간의 또 다른 생각에 힘입어,


미루지 않는 힘을 기르고자,

뜬금포 업무 도중에 다시 글을 남겨본다.


-


언젠가 페이스북에 길게 남겼던 글에도 그리 썼었다.


나는 내 노력과 능력 이외의 무언가로 얻어진 부분이 분명 있고,

내 노력없이 얻어진 어떤 것들에 갚아가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함을.


뭐,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 세상 이치들이 전부 그러할쏘냐.

때로는 그냥 얻어지는 것도, 그냥 잃어지는 것도 있는 것이 인생이니.

그에 대한 수긍, 다만 포기가 아닌 이해와 납득 후, 그에 대한 대처가 현명하고 빨라질 수록, 그 또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겠지 싶다.

즉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놓고 안 놓음에 대한 적절한 사리분별 및 판단과, 그 후의 대처법들, 그게 성장의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존재하는 현상들.


내가 때로 주변인들에게도 말하는 것이지만,

20대 때 어쩌면 열심히 하지만 어쩌면 어떤 때에는 매우 게으르게,

거의 잠과 같이 보냈다.


그 잠들 속에서,

난 늘 혹은 간혹 그랬었다.

앞으로 엄청 바빠질 거니까, 미리 자두는 거야 라고 내게 주문 아닌 주문을 걸었다.

잠은 게으름의 일종이었을 뿐이었는데도,

혹은 습관.

그런데도, 뭔가 더 하면 좋을 것 같은, 이를테면 공부, 독서, 돌아다니기 및 기타 등등,

그럴 시간에 잠을 자는 나를 나 스스로 보며,

앞으로 바쁠 거라서, 라고 되뇌였고.

되뇌이며 잠들어왔었고.


실제로 나는 지금 그렇다. 무척 바쁘거나 혹은 바쁜 척 속 바쁨을 더해간다.


그 안에서 물론 게으름이 없지는 않다만,

혹은 요령껏, 때로는 게으름 때로는 거드름 그런 과정들 속에서,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늘 든다.


미래의 나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과거의 나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런 생각들.


아, 어쩌면 이 생각의 기원들 중 하나는 그것일 수도 있겠다.

고3 때 절친한 친구 ㅎㅇ이에게 말했었다.

그때 내가 그 친구한테 농담하듯 하며 남긴 명언들이 많았다만.

그 중 하나, 정말 나의 단순한 생각 중 하나를 이제서야 이러한 오픈된 공간에 처음으로 적는다만.


에디슨이 발명에 대해 언급하며,

99%의 노력과 1%의 운으로 성공한다던데.

물론, 이 말에 대해서, 어떤 이는 말한다.

그 1%의 운이 있느냐 없느냐 또한 차이가 크다고.

99%의 노력이 있어도, 이를테면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급 어떤 운빨과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1%의 운조차 부여받지 못하여 100은 완성될 리 없다며.


다만,

내가 착안했던 것은,

그럼 내가 갖고 있는 1%의 운의 99배는 노력해야 한다는 것.

즉,

내가 어떤 능력이나 소질, 재능, 혹은 갖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말이다.

어쨌든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의 99배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 친구에게만 속삭였었다.

친구는 명언이라며 매우 감탄해했고,

나 또한 그랬기 때문에 내 이 생각과 말을 더욱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발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15년이 흐르는 동안,

어쩌면 그 생각은 내 깊고 깊은 곳에 크고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된 듯도 하다.

글을 쓰다보니 생각나는 기억들, 새록새록.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 물론 나도 그렇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말에서는

0으로 떨어지는 숫자를 좋아함으로 인하여,

백배 열심히 해야지! 열배는 해야지! 백만개쯤 돼야지! 등의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99배의 노력"이라는 99라는 숫자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뭐 99%와 1%의,

0이 아닌 존재 가치로 생각해보면, 최소 99배.

그게 가장 현실적인 가치와 숫자와 배수가 아닐까,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본다.


그리고 요즘은 많이 어딘가에서 볼 법한, 본 듯한, 말이지만.

오늘이 내가 살아갈 가장 젊은 날.

(난 내가 생각하고 우와 했는데, 이미 있는 말이더라. 역시 사람 생각이 거기서 거기.)

그래서 오늘 그리고 지금은,

가장 젊기에,

실수해도 되는 어리디 어린 그 날이기에,

그러므로

어제는 지나왔듯

앞으로를 살아가듯,

가장 젊은 날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싶은 마음 또한 같이 존재한다.


내가 내 젊은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물론 졸음과 피곤을 전부 극복하고 그런 완벽함을 전적으로 구비하기에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지만,

내 할 수 있는 1배, 2배 ... 3배, 그리고 99배에 수렴해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는 것.


(사업적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내가 따로 가진 기술이나 전문적 부분이, 5년 전 정도에 창업 당시 기준, 별반 없었다고 생각하였기에

노력으로도 함께 승부해야 한다,는 또다른 측면의 생각들과 함께.)


즉,

이러저러하여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그 결론에 이르른 원인은,

아마 매우 복잡하고 견고하게 프로세스적으로 구성되어있었는가보다. 이제보니.

이게 글을 써 보는 묘미일 수도.

기억이 되살아나는 묘, 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좋아한다기보다 가장 마음 깊이 새겨진 말은,

(정확한 문장 단어는 기억하지 못하므로, 문맥으로 받아들여지기 바란다)

- 사람은 두 가지 큰 안 좋은 행동을 한다.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은 하는데 행동하지 않거나. -


대부분의 후회와 좌절은,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

물론, 힘들고 고달프고, 피곤하고, 바쁘고, 고민되고, 하는 모든 순간들에서

마냥 행동만 할 수도 없을 뿐 더러,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때로 행동보다 신중함, 고민이 분명 필요로 되는 날들도 있다.


다만, 고민 될 때 행동하여야 하는 것.

>> 이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자세히 써야겠다. 이야기가 삼천포 아닌 오육천포로 빠질 듯 하여서.


어쨌든,


여러 이유에서,

나는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생각은 하게 되었다만,


실제는 게으르기 짝이 없고,

열심과 게으름의 공존 속에서 매일 경계와 아슬아슬한 밀당을 즐겨 한다만,


내 이 보통 수준을,

사람들은, (게으름의 면모를 보지 않고, 외부적 열심만 보았어서 인지)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며,

에너자이저, 바이탈리티, 열정, 정열적, 적극적 기타등등 생명력적인 단어를 많이 이야기 하는데,


그렇게 24시간 365일을 살지도 않지만,

때로, 그렇지 않은데 그런 말들을 듣기에, 그 말이 오히려 부끄럽다.

윤동주의 서시만큼이나,

하늘을 우러러 나는 그러한 칭찬 혹은 평가들을 듣기에,

한점 두점 많이봐줘서 2,30점 등 부끄럼이 없는가 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나는 과연 열심히 살고 있는가 하고.


다만,

다시금 되짚듯,

내가 가진 능력이나 재능.

- 그게 무엇인지 굳이 언급하기보다 -

그것들이 혹시 다른 사람들보다 많다면, (사람마다 사실 균등 동등 하겠지만)

나는 그만큼 또 사람들의 배 이상,에 99배를 곱해야 하는, 그런 숫자.


사람들과 같다면,

나나 사람들의 어떤 일반적인 1배의 노력보다 많아야 하는 99배의 수치.


그렇게 나는,

오늘도,

화이팅 하자.

양자역학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내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다차원의 내일의 나를

더욱 멋드러지게 맞이하기 위하여.


# 여담. 컴퓨터를 들고 하도 다녔더니, 요 며칠 어깨에 다시금 통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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