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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란 Dec 29. 2021

손 잡고 걷는 부부이십니까

6년째 손을 놓은 아내의 고백

몇 개월 전 바닷가 산책로를 다녀왔을 적에 인상 깊은 장면을 보았다. 중년의 부부와 할머니, 손녀 가족이 함께 산책을 하고 계셨다. 자세히 보니 부부는 손을 잡고 걷고, 할머니와 손녀도 손을 잡고 걷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갈 뻔했지만 난 그 장면이 너무나 깊게 뇌리에 남겨져 있었다. 


요즘 내 눈에는 손을 잡고 걷는 중년 부부가 자주 보인다. 다 같이 손 잡기 캠페인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났을 리 만무하다. 자주 내 눈에 뜨인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 어린 눈길을 자주 뺏긴다는 것일 테다. 나는 타인에게 심할 정도로 무관심하기 때문에 꼭 내 관심사일 때만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요즘 나의 관심사이자 고민은 '어떻게 하면 그와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그는 바로 '내 남편'이다. 

 






남편을 상대로 첫 데이트 상대처럼 이 무슨 고민이겠냐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나는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중년의 부부가 될 것만 같아 무섭다. 정확히 우리가 손을 놓을지는 아이를 낳고부터니까 약 6년 전이 되겠다. 누구나 그렇지만 '첫 손'은 당연히 그가 잡았다. 첫 연애가 어색하기만 한 나는 내 손을 잡을 때면 너무 어색해서 심지어 내 손가락을 접지도 못했다. 그 사람은 지금 내가 나무토막을 나 혼자만 쥐고 가는 것이냐며 다른 손으로 내 손가락을 감싸서 이렇게 잡는 것이라고 손잡기의 바른 예를 보여줬다. 내 손가락을 오므려 온전하게 상대의 손을 감싸 쥐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았지만, 뿌리치지 않은 걸 보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사람은 긴 연애기간 동안 항상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아서 우리의 긴긴 뚜벅이 연애가 하나도 싫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왜 어떤 이유로 손을 잡지 않은지는 나 조차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가 잡은 손은 아이의 양 손이다. 나와 그가 아이의 양 손을 하나씩 손에 쥐고 걷는 게 우리의 손잡기 정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낯선 성인 손이 어색하고 민망해졌다. 내 손에는 작고 앙증맞은 아이 손 하나만 딱 들어와야 할 것만 같은 당연함이 느껴진다.  


산책을 하며 자연스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중년의 부부를 볼 때면 조금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과연 저 나이 때 저렇게 그 사람과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까. 어쩌다가 손가락만 닿아도 어색해서 깜짝 놀라고 마는 사이인데, 아마도 안 되겠지? 나도 저들처럼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오빠, 나도 손 좀 잡아줘! 그리고 좀 안아줘" 내가 대놓고 말해도 이래저래 피하며 끝까지 해주지 않는다. 너무 화나고 열 받아서 "야 이넘아, 좀 해주라고!"소리치면 낄낄 대며 웃는다. 그래도 여전히 해주지 않고 도망간다. 당연히 기분이 상한다. 애정을 구걸하는 여자라니. 자존심 강한 나는 나 스스로가 더럽고 치사해서 나도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나는 의외로 그런 마음을 넘어서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갔다. 슬픈 말이지만, 이 사람도 어색한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어색해서 미칠 것 같은 것처럼. 우리는 어색함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장난처럼 손 잡기와 안아주기를 구걸했다. 안아줬으니까 돈을 달라는 둥, 곰 한 마리를 안고 있는 것 같다는 둥, 손이 왜 이리 거치냐는 둥 장난으로 받아치는 그 사람에게 더더욱 막무가내로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가 아이를 안고 손을 잡고 있으면, 이 한 손은 남는 거네라며 내가 손을 잡기도 하고,  벌려주지도 않는 품으로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 나를 머리로 밀어내고 일부러 아이만 더 안아주며 장난치는 그 사람을 뒤에서라도 어떻게든 안는다. 낑낑대며.  


아무렴 어떠냐, 밀당을 논하고 애정의 갑을 관계를 셈하며 사랑했던 건 낭만이 있던 연애 때의 이야기다.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부부로서 그저 살 닿는 것이 어색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 앞에서도 자주 안고, 손 잡고 걷는 부모가 되고 싶다. 설령 그게 지금은 내가 구걸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부부 사이에서 자존심이라는 건 득 보다 실이 훨씬 많다는 걸 아니까. 나는 그저 시간이 너무 아까울 뿐이다. 



다시 자연스럽게 손 잡는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들이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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