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법을 몰라서

주 5일제가 힘든 이발사 돈수씨

by 이 란

돈수씨가 처음 이발 기술을 배운 건 십 대였다.



60년생의 돈수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생계에 뛰어들었다. 공부를 시켜줄 형편이 아니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빨리 어른이 돼서 돈이라는 세계에서 '내 돈'이란 지분을 갖고 싶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친구들은 각자 알아서 기술을 배워 어른의 세계에 입문했다. 누구는 자전거방으로, 누구는 페인트공으로 누구는 도배공으로. 돈수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말끔해 보였던 이발소를 찾아갔다. 기름때를 묻히지 않아도 되고, 무거운 장비를 나르지 않아도 되었다. 하얀 이발사 가운을 입고 가위질을 하는 이발사가 괜찮아 보였다. 돈수씨의 하얀 피부에 하얀 이발사 가운을 상상하면 제법 그럴듯하게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열여섯 살의 어린 이발사 수습생에겐 쉽게 기술이 허락되지 않았다. 손님들 머리를 감겨주고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을 쓸어내는 일을 하며 곁눈질로 조금씩 가위질을 배웠다. 하루에 백명도 넘는 손님들이 오고 가던 이발소였다. 학교를 다니는 대신 이발소에 다녔고, 월급 대신 점심을 얻어먹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혼자 허공에 가위질을 연습하며 훗날 하얀 가운을 입는 자신을 상상했다. 내 가게를 차려서 돈을 많이 벌어서 돈수라는 이름값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일 머리는 있었다. 18살이 되자 또래보다 가장 먼저 이발사가 되었다. 손님들의 머리를 두상에 맞추어 깎았고, 거품을 내어 매끄럽게 면도를 잘했고, 어렵다던 드라이를 능숙하게 다뤄 반짝이는 머리 모양을 만들었다. 몇 년 사이 금세 전문가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발소 직원 생활로 돈을 모아 나갔다. 돈을 쓰지 않기 위해 넣을 수는 있지만 뺄 수는 없는 작은 금고를 마련해 차곡차곡 돈만 집어넣었다. 원하는 돈을 다 모으면 이발소를 때려치우고 과수원 땅을 사야지. 땅 하나가 없어서 서러움 당했던 어린 시절에 그토록 부유해 보이던 먼 큰댁 친척의 과수원 땅을 내가 사고 말리라. 그렇게 모이기만 하던 금고의 돈은 결국 돈수씨의 엄마 수술비로 금고 문이 강제로 열렸고, 돈수씨의 꿈도 그렇게 강탈당해 버렸다.



모든 게 허탈해진 돈수씨는 고향땅을 떠났다. 내 땅이 되리라 보고 또 봤던 과수원 땅을 볼 때마다 엄마가 원망스러워질까 봐 도망치듯 빈털터리로 낯선 서울땅을 밟았다. 이발 기술은 참으로 돈수씨 인생에서 든든한 무기가 되었다. 경력 기술 우대로 어디를 가든 대우를 받았다. 서울 용산에 즐비한 이발소 중 가장 큰 곳에서 몇 년을 일했고, 여자를 만났고, 결혼을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봉천동에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냈다. 그렇게 한 곳에서만 40년을 넘게 이발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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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수씨는 매주 화요일만 쉬었고, 여름휴가는 아이들이 한참이나 크고 난 이후에 억지로 끌려간 제주 여행 3일이 전부였다. 돈수씨에게 이발소는 집이자 사무실이고 식당이고 헬스장이었다. 그의 삶 모든 반경이 이발소라는 중심을 두고 이루어졌다. 쉬는 날에도 이발소에 가서 불 꺼진 홀 소파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이 65세가 넘어가고 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금요일 하루를 더 쉬어 주 5일제를 해보려고 했다. 26년 새해 첫 금요일, 16살 이후 처음으로 쉬는 금요일 아침. 돈수씨는 갈 곳을 잊은 것처럼 멍해졌다. 이 시간이면 자신이 이발소에서 해야 할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열어만 두면 오랜 단골들이 하나둘 찾아와 놀듯 일하며 돈을 버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앉아서 돈을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큰 딸과 오래도록 약속을 했는데, 첫날도 버티지 못하고 가게문을 열었다간 큰 딸의 실망하는 얼굴이 두렵다. 헬스장을 가고 동네 공원을 돈다. 그래도 아직 금요일이 한참이나 남았다.



결국 항복하는 마음으로 큰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아빠가 노는 법을 몰라서.

금요일에 노는 거 못하겠다. 미안.



돈수씨의 전화를 받고 나는 아빠가 듣고 싶은 말을 도로 돌려줬다.

그래, 아빠 원하는 대로 해. 이발소에서 놀면 되지. 그래 그럼 되지.



아빠가 안심이 된다는 듯 허허 웃었다. 우리 돈수씨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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