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피터 레이놀즈, 문학동네,2003)
-점을 찍는다는 것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미술을 전공하기로 스스로 진로를 정했다. 중학교 때 곧잘 수업시간 칭찬받았던 것을 밑천으로 ‘미술을 할 거야’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목표를 세웠다.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의 역사를 읽는 것도 좋아했던 터라, 좋아하는 것으로만 진로를 정할 수 있다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다. 진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때는 좋아하는 것, 가슴이 뛰는 것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였으니까.
미술 시간에 끝나고, 친구들이 교실을 다 나가기를 기다렸다고 선생님께 다가가 “선생님, 미술을 전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까요?”라고 여쭤보았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 정도의 뜻이UJ 었던 것 같다. 내 말이 어눌했을까? 아니면 엉뚱했을까? 선생님의 대답은 다른 것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는데?”라는 질문에 나는 더 이상 할말을 하지 못하고 교실을 나왔었다. 벌써 몇 십년 전이라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고, 선생님의 의도도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암튼 그후 나는 미술에 대한 꿈을 접었다. 미술을 전공하는데 아버지의 직업이 중요할 수도 있겠다고는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막상 질문을 받으니, 내가 그만큼 좋아하거나 열망하고 있지 않다고 깨닫게 되었다.
피터 레이놀즈의 <점>은 베티의 이야기이다. 미술 시간이 벌써 끝났지만 도화지는 그대로 하얀색인채 베티는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다. 베티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는데, 텅빈 교실에 혼자 남아 뾰루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베티의 모습이 미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의 나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나이가 들어 만난 <점>은 베티보다는 선생님의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나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누군가에게 선뜻 무엇이든 좋으니 시작해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 보니, 세상일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어느 새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살기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들을 줄줄이 꿰는 사람이 되어 갔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는 아이를 만날 때가 많다. 학교로 도서관으로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하러 다닌 요즈음 간혹 수업중에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의사표현을 온몸으로 하는 아이를 만난다. 친구들조차 깨우지 않는 아이들.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아무것도 안하겠다고 베티 같은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깨울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고민을 했다. 어떨때는 선생님으로부터 “그냥 자는 애들을 건드리지 마세요”하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꼭 아이들을 깨우고 이름을 부른다. 아니 더 많이 부르고 싶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베티에게 다시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것이 점 하나라고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지금은 그런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그래 니가 관심이 있다면 한번 찾아볼까?”내지 “그렇구나, 미술에 관심이 있다니”라는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할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달라졌을까라는 의문도 들지만, 그때의 기억은 이상한 좌절감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화가 아직도 내 속에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생각해보니 격려와 응원을 어떻게 하는지 배워본 적이 없다. 어떤 결과에 대한 칭찬과 응원의 메시지는 다른데 말이다. 칭찬은 성과에 대한 언어적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응원은 다르지 않을까, 결과와 상관없이 “어떤 것이라고 좋으니 한 번 시작해 보렴”이라는 말. 그래서 베티가 도화지에 연필을 힘껏 내리꽂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베티의 자기 발견의 서사는 이쯤에서 선생님의 태도를 유심히 보게 만든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도화지를 유심히 보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는 늘 미소를 본다. ‘어쩌면 그래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라는 마음으로.
베티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단 한사람의 관심이었을 것이다. 나도 간혹 아이들의 엎드린 어깨를 관심을 달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때론 착각인 경우도 있고, 아뿔싸하는 순간들도 있다. 누구나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은 어떤 고민보다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지금 나는 아이들과 만나면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솔직하게 얘기한다. 부끄러워서 당시에는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한적이 없다. 왜 부끄러웠을까? 아마 우리집의 사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데 대해 밝히고 싶지 않은 사춘기의 존심의 문제였으리라.
그때는 친구들한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면서, 나의 모습과 다시금 만난다. 엎드려 잠든 아이들을 깨우고 싶고, 여전히 나는 그 이름을 부르고 싶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의 그 좌절감을 벗어던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등학교에서는 미술의 ‘ㅁ’자도 꺼내지 않음으로써 내 나름의 이별 공식을 치렀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나는 미술관과 작가들을 사랑한다. 삶의 방법은 참 많은데, 그때는 깨닫기 쉽지 않았다. 화가가 되는 것만이 미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시간들이 나를 채울 수 있음을 알게 하는 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