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어린이집은 불어로 크레쉬 (crèche)라고 한다. 공립 크레쉬의 경우, 만 4개월 이상인 아기부터 받아주고, 대부분의 사립 크레쉬는 만 1세 이상부터 다닐 수 있다. 스위스 여성들의 출산휴가는 16주라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립 크레쉬는 만 4개월의 아기부터 받아준다. 그래야만 엄마들이 직장으로 바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립 크레쉬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은 많이 부족한 편이다. 임신 12주 차부터 대기자 명단에 등록을 할 수 있는데, 몇 개월 혹은 몇 년까지 대기에 걸려 있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0세부터 만 1세까지 아기들은 베베 (bébé) 그룹에 속하는데, 하루 중 여러 번의 낮잠부터 잦은 수유 그리고 초중기 이유식과 기저귀 갈이 등 챙겨줄 것이 워낙 많다 보니 아기들은 몇 자리 없다. 만 2세 혹은 만 3세 그룹의 경우에는 한 선생님이 여러 명을 동시에 보고 챙겨줄 수 있다 보니 자리가 좀 더 넉넉해지는 편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경우 우리 부부처럼 이민자로 살아가는 가정도 많다 보니, 옆에 육아를 도와줄 가족들이 없어서 크레쉬에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서인지 크레쉬에 자리를 바로 얻지 못하면, 4개월(혹은 국제기구의 경우 6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치고도 회사로 바로 복귀하지 못하고 무급휴가를 더 써서 1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휴직을 하는 여자 동료들도 많이 있다. 베이비시터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스위스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꽤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공립 크레쉬의 우선순위 조건으로는 부모님 두 명이 모두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는 증명을 해야 하는데, 둘 중 한 사람이라도 가정주부일 경우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만약 첫째가 이미 크레쉬에 다니고 있다면 둘째는 우선순위를 얻게 된다. 일부 크레쉬에서는 둘째의 경우 비용을 10%에서 50%까지 할인해 주기도 한다.
공립 크레쉬 비용은 부모님의 소득에 따라 달라지는데 주 5일 풀타임으로 다닌다면, 매달 적게는 몇 백 프랑부터 최대 2500프랑 정도를 내면 된다. 사립 크레쉬의 경우 같은 조건에 매달 적어도 3000프랑 이상은 드는 것 같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풀타임 베이비시터나 내니 (nanny)를 고용하는 것보다는 저렴하다. 국제기구 정규직 직원의 경우, 자녀 학비 지원이 있는데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부터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만 4세까지의 양육비는 온전히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 만 4세 미만 미취학 자녀가 둘 혹은 셋 이상일 경우에는 크레쉬가 무조건 경제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스위스의 공립 크레쉬는 들어가기만 하면, 엄마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선생님들도 시설도 시스템도 정말 좋다. 특히 아기가 어리면 어릴수록 크레쉬 선생님들은 아기 각자의 리듬에 따라 재워주고 먹여주고 놀아준다. 매일 아침, 크레쉬 선생님은 아이가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는지 밤 사이에 잠은 잘 잤는지 아침밥은 언제 먹였는지, 그리고 혹시 아팠다면 어떤 약을 몇 시에 주었는지 등 자세한 내용을 인수인계받는다. 그리고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하루 동안 낮잠은 총 몇 번 언제부터 언제까지 잤는지, 그리고 점심과 간식은 몇 시에 얼마나 먹었는지, 오전 오후 어떤 활동을 하면서 보냈는지 세세히 알려준다.
특히 하루에 한 번 근처 공원에 산책도 나가고, 다양한 미술 활동이나 액티비티 등을 하면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놓고 스스로 충분히 탐구하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게 해 준다. 옆에서 자세히 지켜보면, 선생님들이 무언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기어 다니는 아기들부터 뛰어다니는 큰 아이들까지 스스로 놀 것을 찾게 기다려주고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 같았다.
아이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가르쳐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공립 크레쉬는 들어가기가 어려운 만큼 인원수 제한을 통해 선생님대 아이들 비율을 최적화하고, 작은 그룹 안에서 아이들이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안정감을 느끼며 자랄 수 있게 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그리고 스위스 크레쉬에서 놀랐던 점 하나는, 원장 선생님뿐만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이 아직 모유수유를 하는 아기 엄마들에게 크레쉬에 다닌다고 수유를 절대 그만둘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아기 엄마들에게 모유수유를 권장하고, 번거로울 수도 있음에도 수유텀에 매번 전화를 해서 엄마가 와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해 준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크레쉬의 경우, 또 다른 장점은 0세부터 4세 미만 아이들이 한 반에 섞여 있다는 것인데. 한 반에 총 12명의 아이 중, 만 1세 미만 아기는 2명, 만 1세 아이들 3명, 만 2세 아이들 4명, 만 3세 아이 3명 정도 있다. 그리고 형제자매의 경우에 같은 반에 배정해 준다. 이렇듯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같은 반에 있다 보니, 아침 산책 시간에 큰 아이들이 이제 막 걷고 뛰기 시작한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챙겨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선생님들이 큰 아이들에게는 어린아이들에게 본을 보일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어린아이들은 큰 아이들을 보며 배울 수 있게 한다.
특히 요즘처럼 집에서 핵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집에서 혼자만 크는 것이 아닌, 다양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활동하고 서로 배우고 챙겨주며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리암이도 크레쉬에 다니면서 큰 형들이 레고나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배워 와서 집에서 혼자 해내는 걸 보게 되는데, 기특하다. 그리고 다양한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다 보니, 리암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하고 누구랑도 금세 잘 노는 것 같다.
물론 아이들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내성적이거나 예민한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크레쉬 환경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둘 다 맞벌이를 해야 하고 다른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다면, 난 일찍부터라도 크레쉬에 보내서 부모님도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아이도 적응하며 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크레쉬에서 매일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활동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받는 다양한 자극도 어마어마하다. 실외에서 산책을 하거나 피크닉을 하기도 하고, 다 같이 실내 체육관에서 볼풀장을 만들어 놀거나 미끄럼틀과 다양한 높이의 매트리스를 매일 조금씩 다르게 설치해 체육 활동도 하게 해 준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충분한 안정감과 사랑을 받았다면, 아이들은 크레쉬에 가서도 선생님이라는 안전지대에 둘러 쌓여 신나게 놀면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 같다. 활동적인 리암이는 내가 하루종일 집에만 데리고 있는 것보다, 크레쉬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고 즐기다 오는 것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 크레쉬의 또 다른 장점은 점심 식사와 간식이다. 매주 새로운 식단표가 나오는데, 각 크레쉬마다 담당 셰프가 있다. 매일 신선한 재료와 지역 특산품을 공수해서 주방에서 아이들의 점심 식사와 간식을 당일 아침에 만들어준다. 애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와 디저트까지 코스요리로 제공되고, 오후 간식은 다양한 과일 퓌레와 요거트 그리고 빵 등이 나온다. 집에서는 매일 다양하게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주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닌데, 크레쉬에 가면 매일 새로운 재료로 신선하게 만들어진 요리를 맛보고 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리암이는 크레쉬에 가면 매일 점심을 두 세 그릇씩 먹고 온다. 내가 집에서 만들어 주는 것보다 더 신선하고 좋은 요리가 나올 때가 많고, 나는 주중에 아침과 저녁만 신경 쓰면 되다 보니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점심을 잘 먹고 오니 집에서 저녁을 조금 못 챙겨주는 날이 있더라도 조금은 덜 미안하다.
한국의 유치원은 보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스위스에 사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크레쉬에 보내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자리를 얻어 보내는 것을 더 운 좋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맞벌이나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크레쉬가 되기를 모두들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공립 크레쉬의 선생님들은 모두 전문 교육을 받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수준 높은 교사들이다 보니 책임감도 강하고 대부분 한 크레쉬에 몇 년 이상씩 장기 근무하는 분들이 많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스위스 크레쉬 선생님들은 다 인내심도 많고 현명한 아이 육아 전문가들이었다. 좋은 시스템 덕분에 크레쉬의 아이들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반에서, 여러 명의 선생님들에게 둘러 쌓여 충분히 케어와 가르침을 받으며 잘 자랄 수 있다.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크레쉬에 아주 일찍부터 다닌 외국 아이들은 커서도 불어 발음이 현지인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우리 부부도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밖에서는 영어를 쓰다 보니 불어 노출이 적은 편인데, 크레쉬에 가서 하루 종일 불어로 활동하니 다양한 이중 언어 자극도 줄 수 있게 되어 좋다. 리암이가 불어로 말을 하는 날도 기대가 된다.
우리 부부에게 스위스에서 육아를 하는데 크레쉬는 너무 감사하고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이다 보니 좋은 점 위주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물론 단점으로는 여러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다 보니, 한 명이 아프면 다른 아이들까지 같이 아픈 경우도 종종 있고. 그럼 우리 부부 두 사람 중 한 명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아야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와야 하기도 하다.
그리고 스위스 크레시가 한국의 유치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염병에 걸려도 아이를 크레시에 못 나오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은 아빠가 코로나에 걸려서, 리암이도 전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크레시에 연락을 했더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상관없다는 느낌이었다. 또 한 번은 리암이가 수족구에 걸렸는데 소아과 의사나 크레쉬 선생님들 모두 열만 안 나면 상관없다고 했다. 전염병이 돌고 있으면, 크레시 반 문 앞에 현재 반에서 무슨 무슨 병이 돌고 있다고 안내문 하나가 올라오는데, 누가 걸렸는지 자세한 내용까지 밝히지는 않는다. 그냥 어쩔 수 없이 걸려야 하는 사람들은 걸리고 지나가서 집단 면역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집에서만 키운다고 아예 안 아픈 것도 아니기에 다 겪고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며 우리는 크레쉬에 만족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양가 부모님의 도움도 전혀 없이, 혈혈단신 스위스에서 행복하게 육아를 하며 직장생활까지 할 수 있는 있는 이유.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크레쉬 덕분인 건 확실하다. 한국에 있는 엄마들도 스위스의 엄마들처럼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자신의 꿈과 커리어를 놓치지 않고 행복한 엄마가 되어 너무 힘들지 않게 육아를 하며 아이도 자신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