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1. 복싱장

기억하는 몸

by Liaollet

2년 만에 다니던 복싱장을 찾았다. 오랜만에 본 관장님이 말했다. "어? 날라리 같았는데 왜 이렇게 착해졌어?" 당시 금발이었던 나를 이렇게 기억하다니. 뭐든 반가운 일이었다. 복싱장도 여전한 분위기로 벌써 익숙해진 느낌이다. 관장님이 장난스럽게 다시 묻는다. "왜 또다시 왔어? 누구한테 또 복수하게?"


복싱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복싱을 왜 배우고 싶어 졌냐는 물으면, "복수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화가 가득 차있었다. 삶에 쌓인 분노가 그릇에 넘쳐흐르다 못해 튀길 정도였다. 온갖 그릇들을 다 부숴버리고 싶다는 파괴적인 생각을 벗어나려면 몸이라도 움직여야 했다. 몸이 지쳐야 큰일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렸을 때, 조신하게 악기나 다루는 걸 배운 나는 이런 거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막상 해보면 격한 스파링만 아니라면 안전한 생활운동이었다. 이런 걸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복싱, 유도, 합기도 같은 무술 전혀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반면, 동생은 태권도를 다녔다. 그래서 맞지 않고 오히려 싸움이 났다 하면 때린 쪽이었다. 그때는 이게 왜 부럽지 않았던 걸까?


왜 나는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인 것들만 배웠는지 모른다. 아직도 기억하는데, 초등학교 때 나를 발로 찬 남자아이가 있었다.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반격할 생각조차 못했다는 게 아주 멍청했다고 느낀다. 맞은 게 창피했던 건지, 심지어 이르지도 않았다. 유치원 때는 팔에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심하게 물었던 남자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난 울고만 있었다는 거다. "너도 꽉 물어버리지 그랬어!"라고 하던 부모는 나에게 태권도 대신 악기를 배우게 했다. 난 반격할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맞았던 기억 때문에 복싱을 시작하겠다고 한 건 아니다. 저런 건 어렸을 적 지나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물리적으로 맞지 않아도 엄청 두들겨 맞았다. 무수한 감정적인 폭력과 혐오, 비난에 몸살을 앓았다. 화는 쌓일 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맞고도 어찌할지 몰랐던 게 억울했던 것이다. 왜 참고만 살아야 하지? 왜 맞고만 살아야 하지? 왜 착해야 하지?라는 의문으로 세상에게 쳐맞다 보면, 없던 악이 생긴다.


그래서 복싱을 시작했던 것 같다. 거울을 보면서 많은 걸 했다. 복싱장의 루틴은 스트레칭 - 줄넘기 3분 동안 3세트 - 원투연습 - 발판운동 - 윗몸일으키기 - 러닝머신 - 줄넘기 200개로 마무리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지쳐 나가떨어지곤 했다. 복수는 무슨, 내 몸이 서있지 못했다. 줄넘기 줄을 다시 들었을 때는 늘었다고 신나서 매일같이 1000개씩 하기도 했다. 그러다 발목 인대가 나가 병원에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복수가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온몸을 혹사시켜 얻을 수 있는 건 멈추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란 걸 그만해야지. 원하는 건 그것뿐이었다. 다 잊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라운드벨 3분 종소리가 몸을 깨웠다. 다시 간 첫날에 이걸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다. 한껏 악에 받쳐 혹사시켰던 그 반복은 애틋했다. 별게다 애틋할 정도로 그 시간도, 노력도, 그리고 다시 온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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