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이탈리아에서 아침마다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어쩌다 밀라노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커피가루를 담고, 끓어 올라오는 향을 즐기고 있을까? 마치 이탈리아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흥얼거리며 말이다. 한국에서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주로 마셨다. 처음 커피맛은 물에 담뱃재를 섞은맛이었다. 어느 순간 그 쓰고 떨떠름함이 하루를 버티는 수액이 되며 커피맛은 비슷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탈리아 바에서 에스프레소도 마셔보고, 새로운 커피문화를 접하게 됐다. 유학을 하며 자주 보았던 부러웠던 점이 이런 유럽의 문화의 근원이었다. 시작점이나 본고장이라는 유럽의 스토리텔링은 그 Origin을 실감 나게 했다.
한편 그게 싫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과거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역사였고, 새로운 창작의 힘이었다. 그러나 유럽인이 아닌 아시아 감성으로 치자면 Origin이 나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핏줄로 이어진 속박 같은 것이었다. 지겨운 틀에 박혀, 벗어날 수 없는 것, 새로움에 치를 떠는 뿌리와 같은 인식이 한국에서 느낀 예술과 문화에 대한 얄팍한 시선이었다.
한국에도 아름다운 전통과 예술이 있지만 유럽에 비하면 얇디얇은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명품이라 할 만한 그만큼의 시간과 기록을 쌓은 브랜드가 없는 걸 보면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수업 때 물어봤던 적도 있다. 스스로의 Origin 이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창작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답은얻지 못했다. 자랑스러움이 토대가 되어 굳건해야 할 인식속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엇에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창작하고 전달하는지 몰랐다.
한편으론 코로나를 겪으며 여전히 Origin이 그렇게 힘 있는 의미가 될지도 의문이 들었다. 다름에 목적이 있다면 중요하다. 차별화되어야 할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언제든, 누구든 쌓아도 될 레이어라면, 그때는 어떤 게 중요해지는 걸까?
도자기를 만들 때, 물레 위로 흙을 빚어 층을 쌓는다. 올리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없애고 다시 시작한다. 붙여올려 나가는 층은 새로운 경험과 문화가 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참여 일 수도 있다. 그 위로 이전과 다른 실루엣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점점 이 흙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보다 어떠한 실루엣을 서로 만들고 즐기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거라 여겼다.
모카포트 속 구멍 위로 품어져 나오는 커피물이 쌓이고 쌓여 그 Origin이란 향을 감출 때 비로소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Origin이 중요하다는 건 커피가 중요하지, 사람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무엇인지 보다 무엇을 어떻게 즐기는지가 Origin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