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육아만큼이나 사람을 초탈하게 만드는 일이 있을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자기 전 밤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이유식을 먹일 때는 흘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신경 써야 하고 놀 때는 혹 넘어지거나 먹어선 안 되는 걸 입에 넣지는 않을지 계속 살펴야 한다. 저녁은 재우는 일이 가장 관건이다. 아기는 초저녁엔 잠들었다가도 다시 깨서 울고 나오기 일쑤다. 다시 깨지 않도록 충분히 먹이고 살피고 하는 일에 하루가 다 간다.
육아하면서 어디 육아만 신경 쓸 수 있으랴. 아기가 태어나기 전 지출목록엔 없던 기저귀와 분유가 정기 지출 품목에 오르고 건강한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식재료 지출은 두 배가 된다. 경제적인 문제 역시 신경 써야 한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만족해 가계부도 안 쓰고 투자에도 관심 없던 모습은 이제 필연적인 개선사항이 됐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걸 신경 써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속상하다. 죄책감도 고개를 내민다.
노력을 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엔 이 모든 것들이 나아질 수 없다. 좌절하고 넘어져도 그저 한두 걸음씩 나아질 수 있을 뿐. 오늘 하루도 그랬다. 생각만큼 해내지 못하고 진전 없어 보인 자신에게 속상.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말을 앞두고 머리 좀 식히려는 육아동지 모습에 괜스레 화가 났다. 이런 감정이 치달아 한계에 다다르듯 하면 열심내고 싶던 마음도 사라진다. '아등바등해 봤자 힘들기만 할 거야' 싶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역설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모든 걸 초탈한 태도가 기대 없이 그냥 하게 만든다. 세속적인 것이나 일반적인 한계를 벗어난다는 그 의미처럼 '그래도 하는 게 어디야', '안 하는 것보다 낫지', '그냥 가보자' 이런 생각이 든다. 나를 아직 잘 모르는 나는 모든 면에서 서툴고 부족하고 어설프게 느껴져 도대체 무엇을 잘할지 잘할 수 있을지 확신조차 없지만 일단 해보는 마음이다.
어쩌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거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무언가를 지속할 힘도 없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모든 걸 내려놓듯 삶을 달관하며 초탈한 태도로 '그냥 가보자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등산을 꾸준히 많이 하신다던 한 거래처 팀장님이 생각난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속세를 잠시나마 떠날 수 있어서'라고 했다. 이를 웃으며 얘기하시던 모습에서 삶이 고달파도 묵묵히 정진해나가야 한단 영감을 얻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은 짐작컨대 초탈하는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세상 만국 공통으로 엄마들은 초탈한 존재다. 캐릭터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며 길고 긴 인내의 터널을 통과한 엄마들은 특유의 여유와 따스함, 용기, 인내, 사랑 등 사람을 살리는 덕목을 자신들도 모르게 갖춰나갔다. 완벽하진 않아도 그 가치들은 삶에 스며들었다. 나도 그 엄마가 되고 있다는 걸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