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걱정 중독 아닌지

20년 넘게 이런 걸 보면 나 그냥 이렇게 태어났나 보다

by Peace

나는 걱정이 많다. 잘 불안해하고, 본래 성격은 밝다기보단 어두운 편이다. 내 걱정은 주기적으로 그 주제를 달리한다. 학창 시절엔 성적과 대학이었고, 대학생이 되고부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으니 괜한 걱정을 찾아 만들어야겠던지(이게 화근이었다) 연애와 외모 고민에 소중한 몇 년을 날렸다. 졸업반이 되고부터는 취업 걱정에 잠을 잘 못 잤고, 취업을 하고서는 미래 걱정에 우울해하는 꼴이라니, 이러다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울해하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괴로움이 많은 세상이기는 하지만, 말하자면 나는 삶이 던져준 미션 하나하나에 충실히 괴로워하는 정직한 사람인 셈이다.


혼자 있으면 기분은 주로 차분히 가라앉는다. 하루종일 누워서 핸드폰만 하는 사람은 사실은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던가? 누워서 핸드폰만 보는데 기분이 다운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경우, 반나절 이상 누워만 있으면 스스로가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는 느낌에 더해 어쩐지 살이 찔 것만 같은 압박에도 시달리게 된다.

혼자 누워서 쉬는 것이 좋을 때도 분명 있다.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몰입해서 볼 드라마나 영화가 있는 경우,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분 좋은 피곤함과 보람을 느끼며 누워 잠들기 전 같은 순간.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 인생엔 앞둔 과제가 있고 미뤄둔 걱정이 있다. 난 이걸 무시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몰아 걱정한다.


오늘은 오늘의 문제로 마음이 힘들고 조금은 죄책감도 들어 힘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년 반 전, 심리상담 어플을 통해 상담한 기록을 발견했고 차분히 읽어보게 됐다. 그때의 고민은 지금 약 80퍼센트 정도 해결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고민하며 느낀 감정의 결이 지금의 감정과 정말 닮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싶어. 그런데 나는 지금 계약직 신분이야.' 이것이 약 2년 전의 내 고민 이었는데, 한참 생각하다 보면 '인간은 모두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내 고민의 끝은 어딜까? 운명은 다 정해져 있는 걸까?' 하다가 본질을 흩뜨리고는 그날의 걱정을 마무리하는 식이다.

지금도 그렇다. 어떤 문제로 걱정을 시작하든, 결국은 고민의 범위가 우주를 아우르는 수준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불교 교리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내가 고민 끝에 해답을 찾아서 고민이 끝나는 게 아니라, 그날 할당된 만큼 지겹게 걱정하고 나면 안심하고 걱정에서 벗어나는 개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루에 고작 몇 시간 깨어있다고 꾸역꾸역 시간을 내서 부정적인 생각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니, 이런 비효율도 있을까?


가끔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임 같다. 전력을 다해 문제를 해치우고 나면 말도 안 되는 난도의 괴물 같은 새 문제가 달려들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각종 고난에 울지 않고 맞서 싸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요즘도 자주 운다. 하기 싫어서 울고, 마음대로 안 돼서 운다. 울고 나면 상황은 같지만 좀 더 정화되고 지혜로워진 내가 차분히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면 또 다음 문제가 온다.


부정적인 감각에 잡아먹힌 채로 사는 나지만, 삶에는 분명 어떤 순간이 있다. 맑은 공기와 쾌청한 하늘, 선선한 바람을 적절히 마주하는 절묘한 순간 같은 찰나의 행복이 있다. 하루에 몇 초씩 '아, 이건 정말 행복이다.' 하는 순간을 만나고 나면 그뿐이지만, 지겹도록 고민하고 치열하게 우울해하며 살다 보니 바람 한 점에도 행복을 느끼는 걸 보면 모든 감정에는 다 이유가 있기는 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