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세계에 갇힌 나

by Peace

대학교 4학년 때의 이야기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고민 없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것이 가능한가요?' 교수님께서는 반 농담으로 '고민을 끝낼 쯤엔 죽어야지' 하셨다. 분명 나의 세계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문제를 해결하면 고민이 끝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차마 설명할 수도 없는, 너무 버겁고 막연해서 이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설명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걱정거리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그의 표정은 나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불안하게 했다. 대학교마저 졸업하고 나면 진정한 무소속이 될 학생들이 가득한 수업에서였다. 우리는 스스로의 앞 길을 직접 정하고 닦아가며, 수많은 고민의 파도를 맞아갈 것이었다.


나 역시 고민을 달고 산다. 고민이 많고 읽는 걸 좋아하니 자연히 쓰는 것에 익숙해진 셈이다. 고민하는 습관은 내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어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민거리는 생애주기에 따라 주제를 달리한다. 청소년기엔 외모, 이십 대엔 연애와 진로와 취업. 직장인이 된 지금도 나는 고민거리를 갉아 모은다.

하필 상상력도 풍부한 나는, 습관적으로 어떠한 사건에 관한 가정을 무작위로 머릿속에 흩뿌려 그날의 고민거리를 쇼핑한다. 머릿속 가지는 무한으로 뻗어나가고 분명 한 개 이상의 걱정거리가 내 눈에 띄게 되어있다. 그간 피나는 노력을 통해 이룬 것을 차분히 누리며 기뻐하는 나는 없고, 더 나은 것에만 집중하는 마음이 바쁜 나만 남는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오래 근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가족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의 조건에서 최상의 환경에 거주할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상태가 유토피아 그 자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해 두고 그것에 어긋나는 상황들을 가지치기한다. 내가 사랑하는 누구도 아프거나 불행하지 않고, 나의 일도 생각한 대로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화목한 가정을 이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무탈한 결혼을 한, 건강하고 예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은 성품이 바른, 노후에는 계획한 대로 사업이 잘 굴러가는. 소설을 쓴다 해도 이대로 나열했다간 갈등 상황 부족으로 외면받을만한 그런 상태를 원하고 있었다.

이상적이고 마음 쓸 일 없는 삶을 누가 마다하겠나. 그러나 삶에서 마주한 감당하기 어려운 변수 앞에 몇 차례 헤맨 후에 나는 이상성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떨어지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불행을 두려워하게 된 탓이다. 이것은 곧 강박으로 이어졌다. 모든 불편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면 드센 사람이 되었고, 이를 숨기면 속을 파고들어 우울증과 가까워졌다.

작은 불행이 발생하면 그것은 그 사건에서 끝나지 못하고 내 머릿속에서 3번 정도 재가공되어 되풀이된다. 사건의 원인,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이렇게 될 것이었는데 나에게 미리 고지하지 않은 누군가를 향한 원망까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거다. 인간이 불행하도록 온 세계가 설계되어 있다 해도 진리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다 해도 매일 나를 기다리는 지저분하고 무자비한 현실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 할지 판단은 서지 않고 있다. 대신 친구를 만난다. 야구를 보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그 틈에 불안과 죄책감이 끼어들더라도, 그 익숙한 괴리에 익숙해져보려 한다. 또 한차례 늙어버린 표정을 하고 가장 젊은 시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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