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제작은 본식 최소 네 달 전에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이 사람 저 사람과 약속 잡을 때 자연스럽게 결혼 사실을 알리고 초대장을 건넬 수 있다. 요즘은 청첩장에 사진을 안 넣는 추세라고 한다. 이유는 받을 사람이 버릴 때 청첩장에 신랑, 신부의 사진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나 뭐라나. 2단 접지 형태의 청첩장 내지에는 신랑, 신부의 인사말과 함께 혼주의 이름을 기재한다. 누구의 차남, 누구의 장녀, 하는 식으로. 양가 부모님이 모두 혼주로서 결혼식에 참석하실 수 있는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혼주 가운데 고인이 있는 경우를 대비한 별도의 표기 방법이 있다. 혼주 이름 앞에 故를 붙이거나 국화꽃 이미지를 삽입하는 것이다.
[청첩장을 늦지 않게 제작해야 합니다.] 플래너의 카톡을 읽고 답장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혼식을 위한 다른 준비는 척척 해내는데 청첩장 제작만 이렇게 마음에 오래 붙어 있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청첩장에 적을 혼주 정보를 확정하는 게 두렵기 때문일 거고, 그 글자를 눈으로 보기 두렵기 때문일 거고, 그걸 볼 아빠의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을 지레 걱정하기 때문일 거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리기란 늘 어려웠다. 이 문제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본 동지가 있다면 커피를 사고 싶을 정도로 그렇다. 사람들은 악의 없이 나의 엄마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얘기했고, 그럴 때면 짧게 ‘돌아가셨어요.’ 얘기하고 말지만 매번 마음에 작은 생채기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리고 그 사실을 천천히 수용한 이후로 세상을 보는 눈이 차원의 개편 수준으로 달라졌다. 좀 더 자세히는, 정상 가족 형태라는 것은 무의미하니 타인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한들 한 번 정상에 집착하기 시작한 마음을 원상복구 시키기도 어렵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 준비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빠는 내가 결혼을 늦게 하길 바랐다. 가능하면 안 하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본인이 사랑해 마지않던, 이제는 고인이 된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아름답게 추억하면서도 하나뿐인 딸은 결혼의 시기를 최대한 늦추길 바란다니 모순이라고도 생각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6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아빠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삼십 대가 되었고 서서히 나의 유일한 원가족인 아빠로부터 몸과 마음으로 분리되어 갔다. 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처음 얘기한 날 아빠는 오랜 침묵으로 대신 답했다. 그는 내게 무엇을 해주고 싶었으며 무엇을 해주지 못하게 되었을까.
회피 기질이 있는 나로서는 결정에 따른 결과일랑 내가 책임질 테니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나는 결혼을 안 해봤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알 리 없기도 했다. 꽤나 오래 허락을 보류하던 아빠가 ‘네가 원하는 게 지금 결혼을 하는 거면, 그럼 그렇게 하자. 그럼 너 원하는 대로 하자. 아빠가 미안해.’ 했을 때는 밤새도록 울었다. 아주 어린 시절, 어린이집에 나를 등원시키는 것은 아빠의 몫이었는데 나는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서 목이 터지게 울었다. 그 시절 나는 아빠와 붙어 있기만 하면 되었고, 지금은 아빠라는 알을 깨고 독립하는 것이 소원이 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과 아빠가 내게 해주고 싶은 것이 갈라지기 시작한 순간이다.
결혼은 비단 신랑과 신부뿐 아니라 신랑의 가족과 신부의 가족의 결합하는 예식이라는 사실을 결혼 준비가 진척될수록 더욱 절감한다. 결혼 준비의 많은 과정을 가족과 의논해야 한다. 눈물의 결혼 허락이 있었다 보니, 자잘한 진행 상황을 공유할 때마다 나는 이 소식이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할 거라는 죄책감과 싸웠다.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아빠가 현재 일을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내면으로 들어가면 엄마의 공백을 본인이 커버할 만큼 떳떳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일 거다. 이제는 무의미해진 정상 가족이라는 틀에서 결혼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상상하자면 어렵지는 않다. 엄마와 함께 드레스 고르는 장면, 아빠와 함께 웨딩로드를 걷는 장면이 있겠다. 실제로 나의 아빠는 아빠이기 때문에 엄마의 역할까지는 수행할 수 없었으나 그것이 문제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럼에도 통상적인 결혼식에서 엄마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논의를 할 때,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청첩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잠시 침묵한다.
결혼식까지는 100일 남짓. 모바일 청첩장 제작을 위한 도메인을 등록하고, 실물 청첩장의 디자인 시안을 확인한다. 이것들이 인쇄되고, 발행되어 실체를 가지면 나와 남자친구는 대외적인 가족이 될 테니 신중한 검수의 과정이 필요하다. 청첩장에 엄마의 이름을 넣을지, 뺄지 몇 차례 무의미한 고민을 이어가다 결국은 엄마의 이름 앞에 국화꽃 그림을 삽입해 넣기로 한다. 모바일 청첩장에서 국화꽃 옵션을 선택했을 때 보이는 꽃이 이모지처럼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것 같아 잠시 웃는다. 그렇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보통 돌아가신 지 2-3년이 넘어가면 청첩장에서 생략한다더라’ 하는 지인의 의견을 듣는다. 잠시 엄마의 이름을 생략한 청첩장을 상상해 보고는 마음이 아파져서 그 선택지는 바로 잊기로 한다. 이 사람들이 자식을 이렇게 잘 키워서 시집보냅니다, 하는 의미로 쓰일 청첩장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를 키운 데 가장 많은 눈물과 불안을 쓴 사람의 이름을 뺄 수는 없지. 아직도 이틀에 한 번은 엄마 생각을 하는 주제에 엄마의 이름을 빼는 옵션을 생각했다니 스스로가 가소롭다고도 생각한다. 이 기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도 춥게도 만든 그녀의 공백을 청첩장에서나마 채워낸다. 다시 한번,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